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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3] 둘째 날, 표지를 찾는 법

이 글은 둘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눈을 뜨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다행이다. -_-;

어제 빤 빨래를 만져봤다. 아직 젖어있다.
이런! 입을 옷이 없다.

다행이다. -_-;

네덜란드 부부는 벌써 자전거 짐을 다 싸고 걱정스럽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종일 비가올 것 같아. 오늘 가긴 글렀어. 하루쯤 쉬는게 어때?"

"우린 오늘 떠날꺼야."

-_-
꼬시지 말자. 그만 두자.

...라고 말했지만,
난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계속 부정적인 얘기를 해댔다. -_- (사악하다)

하지만 비가 잠깐 멈춘 틈을 이용해 결국 네덜란드 부부는 떠나고...

이잉...이젠 나 혼자다. ㅠ_ㅠ

난 숙소안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지금은 비가 오지 않지만, 다시 비가 내릴꺼야. 하늘 좀 봐. 컴컴하잖아! "
" 더군다나 옷도 하나도 안말랐다고! -_- "

" .......... "


젠장!

벌떡 일어났다.

전기 라디에이터를 플러그에 꽂고 그 위에 젖은 옷을 얹었다.
옷이 타 버리지 않게(-_-) 중간중간 뒤적여주며 짐을 쌌다.

산의 나무들에 상처입지 않을 긴바지가 필요했다.

방안에 사람들이 버려두고 간 옷들 중에서 츄리닝 바지하나를 골라내고
앞으로 여행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리본달린 티셔츠를 내려놓았다.

슈퍼마켓겸 카페로 가서 아침으로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시고,
점심으로 먹을 빵을 사러 작은 빵집에 들렀다.

"이 빵 한 개랑, 저 빵 한 개 주세요. "

기운없는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하는 내 표정은 우울했고
나보다 오래사신 빵집 아줌마도 그걸 아셨다.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남은 빵 세 개를 그냥 주신다.

감사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빵집 아줌마가 말없이 빵을 내밀며 날 위로해주다니...

"그라시아스, 쎄뇨라~(감사해요, 아줌마) "
난 기운없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줌마도 알테다.
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는 것을.


출발
옷이 대충 마르니 1시.
어제처럼 삽질을 하면 이번엔 저녁 9시에 도착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식은땀이...-_-;;;
곰한테 물려가면 어떡하지? -_-;

서둘러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성큼성큼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점점 해가 나고 있었고
아줌마 덕에 내 마음도 한결 밝아졌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나를 생각해주다니!
어제 산에서 만난 하비르에 이어 내가 만난 두 번째 천사다.
내게 용기를 주고 있어.

본격적인 산 오르기에 앞서 아스팔트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어제 본 Roncevanx로 가는 두갈레 길 중 쉬운 길)
역시나 첫 날에 이어 표지를 놓쳐 다시 1~2키로 정도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_-

난 숫자를 익히는 어린아이처럼 표지를 찾는 법을 익힌다.


찾았다!



음.. 두갈래 길이다. -_-


오른쪽 길이다.


그래,


이 길이다.


이건 너무 쉽군. 세 개씩이나! -_-


본격적인 산 오르기
아스팔트 길에서 갑자기 산으로 들어가자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 길이 펼쳐졌다.
아무도 없어 유령이나 짐승이 튀어 나올까 무서웠다. -_-

가뿐하게 느껴졌던 짐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땀은 벌써 입고 있던 옷을 다 적셨다.
다리는 후둘후둘,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난 정말이지 산이 싫다. ㅠ_ㅠ

그래서 이때까지 산을 오르지 않은 만큼
고생하라신다. 제길! ㅠ_ㅠ

가방과 모자를 던지고 쓰러진 나무에 대자로 누웠다.
정말 죽을 것 같다. 물도 떨어져가고 있었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내내 신이 묻는 것 같다.

" 이래도 순례를 계속 할테냐? "
" 네 짐의 무게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느냐? "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아래 사진] 처럼 욕심을 부린만큼 물건들을 두고 갔다.


여분의 바지 하나.
여분의 티셔츠 하나.
심지어 여분의 양말 하나까지.

고작 몇백그람.
평상시 아무런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물건들의 무게를
순례중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느낀다.

그리고, 겸손해진다.

또는, 자신을 시험한다.

저는 할 수 있어요.
무겁지만, 제가 선택했어요.
선택에 대한 결과는 제가 책임져요.

전 하나도 버리지 않겠어요.

정상

지금 생각하니 정상엔 성당이 있었다.

바람이 무척 불었고,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_-

이곳에서 처음 순례자들을 만났다.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하곤 처음이다. ㅠ_ㅠ

당췌 내가 걸었던 길엔 왜 아무도 없는거야! ㅠ_ㅠ
(이 의문은 다음날 풀리게 된다. -_-)

 [위의 사진] 순례자들이 만들어 꽂아 놓은 십자가들

지도에는 정상을 지나, 산을 넘어야 숙소가 있다고 나와있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가야한다. ㅠ_ㅠ

위에서 내가 본 순례자들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위의 사진]의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다. -_-

해질까 무서워 열심히 걸어내려가니
또 다른 십자가가 보였다.
건물들이 보이는게
정말 다 왔나부다. ㅠ_ㅠ

흙, 감격.
대박 삽질한 어제보다 낫다. ㅠ_ㅠ

유스호스텔 표시를 따라 들어가
순례자증서에 처음 도장을 찍고 체크인을 했다. 8유로.

좀 전에 만난 자전거 순례자들 아저씨
그룹이 도착, 같이 수속을 했다.
(내가 날아 온건가? -_-)

내가 배정받은 방안엔 세명의 여자 순례자들이 있었고,
문 밖에는 냄새나는 등산화들이 줄줄이 내놓아져 있었다.

드디어 순례자들과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ㅠ_ㅠ

 [위의 사진] 순례자들이 걸어놓은 빨래들. 날씨가 흐려 빨래가 얼마없다.


2007. 2. 12(2009.12.7 업데이트) pretty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