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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 3년 후] (1) 다시 생쟁

이 글은 순례자의 길을 걸은 후 3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3년 전의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생 장으로 가는 두 칸짜리 열차

순례자의 길을 걸은 지 어언 3년이 지났습니다. :)

3주년이 되던 2009년의 생일날, 저는 또 한 번 유럽에 있었고
이번엔 프랑스 남쪽의 '루르드'에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 가난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에게
성모 마리아가 18회 발현한 곳으로 유럽의 제3대 성지 중 한 곳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가리킨 곳에서 샘이 솟았는데 이 샘물을 마신 사람들 중 4천여건의 난치병 치료 기록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기적의 샘물로 침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뭐, 생일날 루르드에 간다던가 그곳에서 침수(성수에 몸을 담그는 것)를 한다던가 하는 것은
이번 여행의 계획에 있었던 일은 아니었지만
'마크툽(이미 정해진 일)'처럼 우연히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저는 3년 전 순례길을 시작했던
생장 피에 드 포르로 향합니다.
.
.

생 장 근처에 가게 된다면 조사차 잠깐 들리려고 했는데,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순례길에 대한 표지를 너무 본 탓인지
조금은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독일, 브레멘의 서점에서 본 산티아고 관련 책

 [위의 사진] 브레멘에서의 출발지, 롤란드 동상 앞

 [위의 사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의 출발지, 성 야고보 성당

 [위의 사진] 룩셈부르크, 산책길의 표지

제 순례자의 길 여행기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생일이었던 첫 날, 고생을 좀 덜해보겠다는 얄팍한 마음에
힘들지만 풍경이 좋은 조금 빠른 길과
쉽지만 주로 도로로 이어진 시간이 더 걸리는 길 중
쉬운 길을 택했다가 당일날 도착할 수 있는 론세스바예스에
1박 2일이나 걸렸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

제 1박 2일 동안 있었던 고생의 이야기는
많은 분들에게 즐거운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었죠~ -_-

애니웨이,
그 때 쉬운 길을 택했던 마음의 빚이
3년 동안 제 심장을 누르고 있었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_-; 어려운 길을 걷고 싶어
생쟁으로 향합니다.

생장 피에 드 포르,
제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대는 곳입니다.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생 장으로 향하는 두칸짜리 오늘의 마지막 기차에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꽤 보입니다.
3년 전에는 첫 기차를 타고 도착했었는데, 순례자는 저 하나여서
정말 걷는 사람이 없나부다... 했었는데 마지막 기차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다르네요. :)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자도 있지만, 대부분 도보 여행자입니다.
기차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다들 조금은 흥분한 모습. :)

 [위의 사진] 오랜만에 다시 본 생 장의 기차역 표지

[위의 사진] 기차역 주변의 모습

한시간 쯤 걸려 도착한 생쟁의 자그마한 기차역 앞에는 마을 지도가 세워져 있고
지도를 보면 쉽게 순례자 사무실이 있는 생장의 구시가지로 향할 수 있습니다.
도보로 10분 정도 걸립니다.

[위의 사진] 기차역 앞의 지도

조사차 여행하고 있던 터라 트렁크에 가득 찬 자료 때문에 무거워
순례자 사무실로 가기 전 먼저 숙소를 구했습니다.


그냥 눈에 먼저 띈 곳으로 들어갔죠.

[위의 사진] 36번지의 사설 알베르게

36번지의 사설 알베르게, 도미토리가 7유로부터 있어요~ :)

짐을 놓고 일단 순례자 사무실로 고고싱~!

[위의 사진] 반가운 순례자 사무실

문을 닫았을까봐 조금은 마음을 졸였는데
운영시간이 21:00까지네요. 생쟁에 오후 6시 반쯤 도착했으니 넉넉한 시간~ :)

[위의 사진] 친절하게 순례자를 맞는 자원봉사자들.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 내에 붙어있는 2008년 자료를 봤습니다.

 
세상에나! 제가 걸었을 2006년에 66명이 걸었었는데(2005년엔 14명이었답니다~!)
2년만에 947명이 걷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

 
출발하는 장소, 역시 생쟁이 제일 많네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걷는 시기는 3월 28일~5월 4일,
그리고 9월 1일~7일 사이입니다.

축제 기간인 7월 9일~27일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 뒤 시기에 비해서는 좀 줄어든 편이네요.

두 개의 길입니다. 왼쪽의 첫 번째 길은 산길로 8시간이 걸리고,
오른쪽 두 번째 길은 주로 도로 길이라 주의를 해야하고,
걷기에 좀 더 편하지만 10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해 줍니다.
2006년에 2번 길로 걸었다가 1박 2일이 걸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바로 그 길이죠~ -,.-;;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5유로에 만들고 고도와 알베르게 정보가 표시된 A4용지 두 장을 받고
첫 날에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 사항을 들었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주인 아주머니를 불러 이야기를 하려는데
아줌마가 제 트렁크 가방을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이걸 가지고 피레네 산을 넘을꺼니?"

-_-;;;;;;;;

순례자의 길이 생각나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하루만 걷고 돌아올 거라고 제 상황을 설명했더니
짐도 맡기고, 돌아와 1박을 더 하기로 합니다.

돌아오는 차편도 겸사 문의했는데
대중교통은 없고 바로 건너편의 사설 오피스를 소개시켜 줍니다.

 [위의 사진]  31번지 Express Bourricot

피레네 산이 부담되는 사람들을 위해 짐을 운송하고,
스페인-생장 간의 교통편을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혹시나 또 길을 잃거나...-_-;;; 늦게 도착해 1박을 론세스바예스에서 할 수도 있어서
예약은 하지 않고, 전화번호와 차를 기다리는 장소와 시간만 알아둡니다.

그리고, 저녁밥을 든든히 먹으러 출발~! :)

 [위의 사진] 순례길을 걷기 전 날, 먹은 든든한 저녁. 한 접시에 생햄(?)과 소스, 샐러드, 치즈와 감자.
빵과 물, 그리고 와인 한 잔. 제가 싫어하는 감자 튀김이 주로 가득...ㅠㅠ
동네에서는 그나마 저렴한
9유로

와인은 예수님의 피, 그렇기 때문에 순례자들의 메뉴에는 거의 대부분 와인이 포함됩니다.
이곳은 한 잔이지만 스페인은 주로 단지나 병째 나온답니다~ -.-

 
숙소로 돌아와보니 커다란 가방이 놓여져 있고 큰 개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개의 주인으로 보이는 히피 친구는 집 밖에서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나중에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전해들었는데
이 프랑스 친구는 개와 함께 순례여행을 출발했는데
스페인 지역의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개를 받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고 하네요.
결국, 순례 길을 포기하고 돌아와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다는데...
개는 피곤한지 일찌감치 저렇게 누워 눈 한번 안뜨고 쌕쌕~ 잘 자더라구요~

사실, 제가 키우는 페키니즈 강아지인 '미미'와 함께 여행해보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데
미미는 체력이 딸려서 이런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_-;;
미미가 한 20분 걷다 뻗으면 제가 안고 다녀야하니 짐만 늘 듯. -_-;;;

저는 무엇보다 이 친구의 거대한 가방과 여분의 신발 두 켤레, 책 등등의
짐에 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_=
저라면 개보다 저 짐 때문에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네요. -_-;;

역시 서양친구들은 가방이 커요. =_=


제 침대는 오른쪽의 1층, 노란색 매트리스입니다.
 아줌머니의 활발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숙소였는데
한국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까다롭기로 소문났더라구요. 하지만, 규칙만 잘 지키시면 됩니다.

1. 신발은 신발장에 두고 실내에선 without shoes, 2. 다른 순례자들이 잠 잘 땐 떠들지 말 것.
3. 급하게 서둘지 말고 릴렉스, 아줌마의 집이니 아줌마의 안내에 따르세요.
세 가지입니다. 아줌마가 잔소리할 때는 이 규칙을 어겨서에요~ :)


내일이 첫날이라며 걱정된다는 독일 언니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조금 수다를 떨다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듭니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6시에 꼭.

2009. 8. 17(2010.4.26 업데이트)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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