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포파얀의 숙소를 나서는데 어디로 떠나는지 묻는 남자가 있었다.
“에콰도르 국경으로 가는데요~” 라고 했더니, 자기도 국경으로 간다며 얼른 가방을 메고 따라 나선다.
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야 했는데, 이 친구 덕분에 택시비가 반으로 줄고 안전하게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치안이 불안한 남미에서는 종종 택시를 타야 할 일이 생기는데 요금도 요금이지만 혼자 타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택시기사가 종종 강도로 돌변하기 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 같기도 하고 동양 사람 같기도 한 외모에 어느 나라 사람인가 했더니
국적은 독일인데 엄마가 한국 사람이란다. 이름은 태오, 이태오다. 이런 데서 한국인 혼혈을 만나다니 반가웠다.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어릴 때 엄마한테 배운 ‘어린이 반말’ 정도 수준이다.
한국인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 따끈한 밥보다는 독일의 곡물 빵을 그리워하는 정말 독일인이다.
태오는 나와 함께 국경을 넘고 에콰도르의 오타발로와 키토까지 동행했다.
“콜롬비아에서 지낸다고?”
“응, 콜롬비아의 독일계 여행사에서 일해.”
남미 정치학인가 사회학인가를 공부를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콜롬비아와 남미 정세에 대해 빠삭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났다.
며칠 전 콜롬비아에서 말 트래킹을 하러 산아구스틴에 갔을 때 게릴라가 버스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
그 바람에 짐을 맡겨둔 포파얀으로 돌아오는 길이 폐쇄되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른 길로 멀리 돌아오게 되었는데,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정말 고생했다.
이런 방화 사건들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단지 관심을 모으기 위해 차량을 태울 뿐이지 사람들은 먼저 내리게 해서 도망가게 한단다. 게릴라들은 산악지대의 마약재배지를 보호해 주고, 그곳에서 생산된 마약을 판매한 돈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한단다. 혁명을 한다는 사람들이 마약으로 활동자금을 모으고 있다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경을 통과해 오타발로에 도착했다.
이곳은 주말시장으로 유명한데, 태오는 품질 좋기로 유명한 울 니트를, 나는 핸드메이드 그림을 샀다.
다음날은 적도를 구경하러 갔다. 위도 0도.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념 전망대와 평범한 놀이공원만이 있었다. 당시는 물을 뿌리는 축제기간이었는데 외국인인 우리는 어제부터 주된 목표물이 되어 물과 눈 스프레이 세례를 피해 다녀야 했다.
태오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남미에 온 거냐니까 아니란다.
“그럼, 남미에서 살게 된 이유가 뭐야?”
태오는 “독일은 너무 따분해(boring). 유럽은 사람으로 따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곳이야. 변화도 거의 없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정말 남미는 유럽에 비하면 새파란 청년 같은 나라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나라도 많고, 무장 강도들이 나타나 여행자들을 납치하거나 총칼을 들이대고 돈을 내놓으라고도 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 (오른쪽 위 사진) 에콰도르는 나라 이름이기도 하지만 적도란 뜻으로, 에콰도르에는 에콰도르가 있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의미가 있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삶에서 세계인이라는 동질감을 얻고, 또 한편으로는 이질감에서 오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서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 느린 삶을 즐기기 위해서도 여행을 떠난다. 반면 태오는 모든 게 안정된 곳에서 탈출해 모험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 콜롬비아로 떠났다는 게 내게는 흥미로웠다.
몇 달 뒤 도착한 유럽에서 어느날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곳은 너무 심심해(boring). 기껏해야 소매치기니 정말 너무 안전하단 말이야.
긴장감 가득하고 스릴이 있는 남미가 점점 그리워져.”
남미에서는 두려움에 벌벌 떨다가 유럽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에콰도르(Ecuador)
에콰도르는 북쪽으로는 콜롬비아, 남쪽과 동쪽으로는 페루와 접하고 있다.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에콰도르에 포함되는데, 이곳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항공권이나 배를 포함한 투어비용이 만만치 않은 곳이어서 가난한 여행자들을 망설이게 한다.
에콰도르는 1450년쯤부터 잉카인들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1526년 스페인 함대가 이곳을 침략했다. 이후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잉카제국은 멸망하고 만다. 1822년에서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인종은 메스티소와 인디오들이 섞여 있으나 콜롬비아나 아르헨티나보다 인디오의 비율이 높다. 종교는 가톨릭. ‘에콰도르’는 ‘적도’를 의미하는 스페인어로, 실제로 적도가 지난다.
여행정보
에콰도르로 가는 직항은 없으며 수도인 키토로 들어가는 아메리칸항공과 콘티넨털항공이 있는데, 일본과 미국을 2∼3회 경유한다. 비자는 필요없으며 달러를 사용한다. 에콰도르의 적도는 수도인 키토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야 되며, 입장료는 0.4달러다. 적도(Mitad del Mundo)는 푸드코트와 박물관 등이 있는 공원으로 요금은 2달러. 에콰도르 식당의 음식 가격은 음료수를 포함해 1∼2달러 정도로 매우 저렴한 편이지만, 맛있는 편은 아니다. 먹을 만한 메뉴는 수프인 칼도(Caldo)와 소고기 구이, 야채, 밥, 계란프라이가 함께 나오는 추라스코(Chorrasco)다. 인터넷은 1시간에 1달러로, 한국과 비슷한 요금이나 속도가 매우 느리다. 호텔 역시 싱글룸 4∼5달러, 트윈룸 8∼10달러로 저렴한 편이다. 남미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지만 밤에는 위험하니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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