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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13] 열한번째 날, 달리던 그 아저씨


이 글은 열 한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까바요(Caballo, 말)를 탄 순례자 커플
무뚝뚝했던 검은 옷 언니, 아이슬란드의 교수 남자, 친하게 지냈던 독일 언니.


순례자들은 단연 걷는 사람이 제일 많고(80% 정도), 그 다음이 자전거 순례자(18%)다.
말을 탄 순례자들도 순례자로 인정하는데(2% 정도)
(여기서 '인정한다'는 말은 순례자 여권이 발급되고 순례가 끝난 이후 증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
내가 만났던 커플은 꽤나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여행하고 있었다.

    1. 일단 말을 타고 그날의 목적지에 간다.
    2. 알베르게에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때때로 음식을 해먹기도 한다.
    3.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간다.
    4. 말의 집이 연결된 차(캠핑카 종류)를 몰고 목적지로 간다.
    5. 차에서 잠을 잔다.

매일매일 1-5번의 과정을 반복한다. -_-

이런 복잡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왜 말을 타고 순례여행을 하는지 궁금할테다. 정말 왤까?

이들은 말을 이용해 빨리가는게 목적이 아니라
단지 말을 좋아해 주변경관을 천천히 구경하며 순례하는 사람들이었다.
걷는 나와도 종종 알베르게나 길에서 만났으니까.

애니웨이, 오늘은 7시 25분 출발. 어제보다 5분 일찍 출발했다. 하하하.
다른 날과 조금 다른게 있다면 오늘은 나와 엇비슷하게 출발한 사람이 꽤 되었다.

5분 일찍 출발해서 그런건 절대 아니고,
그렇닥 다른 순례자들이 늦잠을 잔 것 같지도 않고
날씨가 흐린 것 때문인 것 같다.

하루종일 우울한 날씨가 이어져 걷기에 수월했던 날.

열 한번째날, 레데시야(Redecilla) 26.5km
길을 걷다보니 옆에 지나가던 트럭이 갑자기 빠앙~ 소리를 낸다.
밀밭 코너에서 옷을 추스리며 한 여자가 투덜대며 나왔다.

"예의도 없는 것 같으니."

아침에 나보다 조금 먼저 출발한 38살의 오스트리아의 언니, 기세라였다. 

밀밭만 주욱~ 펼쳐진 데라 어디 숨을 곳이 없어 밀맡 옆의 길을 화장실 삼았는데
트럭 아저씨가 보고서 빵빵~ 놀린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_-;;;

비영리단체에서 회계쪽 업무를 맡고 있다는데 자기는 타고난 walker라고 했다.
엄마는 잘 걷지 못하는데 아빠는 산타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긴 아빠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수다는 재밌었지만, 이야기하면서 기세라와 함께 걸으려니 숨이 헐떡거려졌다.

"기세라, 미안... 난 좀 천천히 갈게. (다리가 너무 짧아. -_-;;)
 아스따 루에고(Hasta Luego, 안녕~ 다음에 봐) "

긴 다리를 가진 사람은 짧은 다리를 가진 사람의 보폭을 인식하지 못한다.
말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

[위의 사진] 곱게 빗겨진 머리처럼 가지런한 밀밭 길이 끝도없이 펼쳐졌다.

산토 도밍고 델 라 칼쯔

[위의 사진]  닭의 전설이 있는 산토도밍고 성당

아소프라에서 15.5km 떨어진 산토 도밍고 델 라 칼쯔(St. Dom. del la Calz)에 도착했다.
이곳은 닭의 전설로 유명한 곳인데.... 성당 안에 한쌍의 닭이 있다.

옛날에 가족 순례자가 이곳을 지날 때 숙소의 하녀가 순례자 가족 중 아들에게 반해 구애를 했는데...
아들이 거절하자 은촛대를 아들 가방에 숨겨 도둑으로 몰아 산토 도밍고 성당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가족은 순례를 계속하고 산티아고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을 다시 지나게 되었는데...
교수형 당한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 +.+
St. Domingo(성 도밍고, 산토 도밍고)가 팔로 바치고 있었다고 한다.
기쁜 마음에 가족은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아들이 살아있다면서 내려달라고 하지만,
식사중이던 수도원장은 비웃으며 "그게 사실이라면 식탁위의 조리된 닭 두마리도 살아 있을껄?" 이라고 말하자
정말 죽었던 닭이 살아나 움직였다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 이 성당 안에는 닭 한쌍을 두게 되었단다.


독일 언니가 닭을 가리키면서 남자 닭은 옛날부터 절대 죽지 않고 그대로이고,
여자 닭만 매일 바꿔놓는다고 하는데... 난 말도 안돼~~ 라고 말했지만...
농담인지, 아니면 정말인지는 정확한게 아니므로 패스. -.-

성당 근처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과자, 커피로 점심을 먹고
슈퍼마켓(GAMA, 슈퍼있는 곳에선 무조껀 장을 보게 된다!)에서 장을 본 후 다시 출발.

[오른쪽 사진] 양귀비 꽃밭이 나왔다.

[위의 사진] 양귀비꽃

[위의 사진] 한 아저씨가 달려서 내 옆을 지나간다. "부엔 까미노!"

가방에 조개가 달려있는 것을 보니 분명히 순례자다.

달려서 산티아고까지...? +.+
걷는 것도 힘든데 달리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8km정도를 더 걸으니 작은 마을, 그라뇽(Granon)에 도착했다.

힘든데 여기서 묵을까... 했지만 마을이 너무 썰렁하다.
컨디션도 괜찮은데 조금 쉬다가 다음 마을에서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앗. 실야다. +.+

[오른쪽 사진] 실야가 복숭아를 씻고 있다. 땀으로 다 젖어 버린 티셔츠를 보라.

헝가리인인 실야는 며칠 전 비아나의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었는데
영어를 잘하길래 미국인인 줄 알았더니 미국의 YMCA캠프에서 6개월인가 1년인가 일했었단다.

가방도 무겁고 체구도 큰데다 걸음이 느릿느릿해서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녀는 끈기의 화신이었다.

느리지만 자기 페이스대로 차근차근 걸어 결국 숙소에 도착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실야에게 오늘은 어디서 묵을껀지 얘기했는데 나와 목적지가 같다.

내가 쉬는 동안 실야는 다시 출발해서 인사를 하는데
아까 봤던 달리는 아저씨가 한 구석에서 쉬고 있다. 다시 눈인사~
 
왜 달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시 아저씨도 출발해버려 포기. -,.-

[위의 사진] 마을 내리막길에 아이리스가 펼쳐졌다.
아이리스를 참 좋아하는데 꽃만 말고 이렇게 나무로 보는 건 처음이다.
(아이리스 나무가 이렇게 생긴거 맞는거지? =.=)


[위의 사진] 밀밭의 한쪽 길에서 돌을 베고 자던 개. 나도 저렇게 자고 싶다. =_=


많이 걸어 피곤했지만, 3.5km 정도를 가면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여기저기 사진도 찍으며 룰루랄라~* 밀밭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앞쪽의 수풀이 흔들리며 바스락 소리를 낸다.

깜짝놀라 멈춰 쳐다보니 아까 그 아저씨다.

“I chose wrong way like my life."
(난 잘못된 길을 택했어. 마치 내 삶처럼)

한마디로 삽질해 의기소침해진 아저씨는 나와 잠시 보조를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의 울룸(Ulm)에서부터 순례여행을 시작한 그는 매일 달려왔다고 했다.
왜 걷지않고 달리냐고 물었더니 “달리면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 수 있잖아.” 란다.

음...-_-;;
알겠지만 내 다리는 짧아 걸음이 느린데...
달리던 아저씨와 이번에 세 번째로 마주쳤다. 정말 이상했다. -_-;

잠시 뒤 아저씨는 다시 달려갔지만...
30분 정도가 지나 도착한 알베르게의 1층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쉬고 있던 아저씨와 만났을 때는
정말이지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뭐... 놀라긴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_-;;; 

[위의 사진] 울룸에서 온 달리던 아저씨.

레데시야(Redecilla)에 도착
7시 25분 출발-오후 4시에 도착. 8시간 35분 걸었다. -.-

Ref. municipal (도네이션)
레데시야에 있는 하나뿐인 알베르게. 22인 정원.
숙박비, 인터넷, 저녁식사 모두 도네이션.
체크인 시 저녁식사를 할 꺼냐고 물으며 메뉴를 알려주는데
주문받은 만큼만 음식을 준비한다. 음식맛은 그닥그닥. -.-


[위의 사진] 밀 사이에 핀 나팔꽃과 벌

 2007. 9. 3(2010.2.22 업데이트)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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