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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길에서만난사람

<27>볼리비아 바예그란데 - 체 게바라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곳


◇ 라 이게라(La Higuera)의 체 게바라 동상. 생포당한 체는 이곳 이게라의 작은 학교에서 총살당했다.


체 게바라하면 '쿠바'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는 아르헨티노(Argentino·아르헨티나인 남자를 부르는 말)다.
아르헨티나인으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었고, 세계 혁명을 꿈꾸며 아프리카와 볼리비아로 떠났다.

체가 볼리비아를 중요시여긴 이유는 볼리비아가 5개국과 인접해 있고 남미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데 주목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듯 볼리비아의 혁명이 성공한다면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1965년 다양한 국적을 가진 동지들과 함께 게릴라전을 수행하러 볼리비아로 향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967년, 서른아홉 살의 뜨거운 생을 마감한다.

볼리비아의 이게라((Higuera)와 바예그란데(Valle Grande)는 체의 마지막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게릴라전 도중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혀 미국 CIA의 명령에 의해 총살당하고 30년 동안 암매장되었던 곳이다.
바예그란데까지는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스에서 장거리 버스를 두 번 타야 한다.

경유지인 코차밤바행 버스표를 사러 터미널에 갔더니 때마침 파업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군복을 입은 사람이 번호표를 나눠 준다.
피난민처럼 목적지가 쓰인 팻말 앞에 일렬로 앉아 있으니 잠시 뒤 따라오란다.

건물 뒤쪽의 통로를 따라가니 ‘카미욘(Camion)’이라는 군용 화물트럭이 나타났다.
‘세상에나! 이걸 타고 가야하다니!’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바깥쪽도 볼 수 없는 높은 난간이 둘러처진 가운데 의자도 없는 딱딱한 바닥에 앉아
울퉁불퉁한 도로를 9시간 달리니 자정이 다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군부대다.
돈이 아무리 들어도 좋으니 깨끗한 호텔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편안히 자고 싶었다.
그러나 밖은 위험하니 트럭 안에서 자란다. 날이 밝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다시 산타크루즈로 이동했다.

파업이라 바예그란데까지 직행이 없다. 또다시 카미욘 안에서의 11시간이다. 파업 덕분에 공짜였지만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 산타크루즈에 도착하자 다행히 목적지인 바예그란데까지 가는 낡은 버스가 있다.
장거리 버스를 연속해서 세 번이나 탔더니 거의 탈진 상태다.

자정무렵,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첫 번째로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 죽은 듯이 잠들었다.
◇ 살해된 직후 체의 유해가 공개된 말타 병원 세탁실.

바예그란데는 나의 남미 여행에 있어 최우선 순위의 목적지였다.
대학교 때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으로 내가 여기에 온 것만도 꿈만 같았다.
30년 동안 체가 암매장 되어 있었던 곳, 지도를 보고 따라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쿵쾅댄다.
하지만 입구에 도착하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문이 잠겨 있고 표지판에 '내부를 보고 싶으면 시내의 문화센터(Casa Municipal de Cultura)에서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라.'고 써 있다. 문화센터는 아까 시내에 갔을 때 굳게 잠겨 있던 곳이다.

‘어떻게 찾아온 곳인데… 이럴 순 없어!’ 낙담해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더듬더듬 초등학교 수준의 스페인어로 머나먼 한국에서 왔고, 이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영 반응이 없다. 다시, 문화센터는 문이 잠겨 있고 라파스에서 파업 때문에 힘들게 왔으며
체를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체와 여섯 동료의 무덤으로 안내한다.
◇ 힘들게 찾아간 포사 게히에로스에 들어가게 해준 아저씨.


1997년 다국적 발굴단에 의해 바예그란데의 비행장 활주로에서 이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체의 시체는 오른손을 잘라 오라는 당시 CIA 상부의 지시에 의해 손이 없는 상태로 확인되었다.
아저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스페인어를 더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다.

깊게 파인 구덩이에 체와 동료들의 이름이 쓰인 초라한 비석을 보자 눈물이 핑 돈다.
미국은 남미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체를 하급군인에게 술을 먹이고 돈을 쥐어 주고 긴급히 총살하게 했다.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수장은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게 예의이건만 무례하기 그지없다.
시체조차 세탁실에서 공개해 수모를 겪게 하더니 그 다음엔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던져 30년 동안 외롭게 잠들게 했다.

아저씨는 문화센터의 투어를 이용하면 개인적으로는 가기 힘든 이게라(체가 총살당한 곳)에 갈 수 있다며
투어를 추천한다. 문이 잠긴 것은 개장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니 다시 가보란다.

코레아나(Coreana, 한국 여성)는 처음 봤다며 머나먼 이곳에 와 줘서 고맙단다.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죄송하기만 했다.
체의 자취가 남아 있는 중남미의 모든 곳에는 애정을 담은 글귀와 꽃이 가득하다.
그가 꿈꾸던 혁명은 비록 실패했지만 체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위대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 이라 말하기도 했다.
20세기를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심장으로 살았던 체의 삶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열정에 1/10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체의 무덤 주변에 놓인 꽃들.

바예그란데(Valle Grande)
‘큰(Grande) 계곡(Valle)’이라는 뜻으로, 험준한 계곡 속에 위치한 마을이다. 볼리비아 혁명 당시 체와 그의 동료들이 이곳 주변의 산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와 그의 동료 전원은 붙잡히거나 사살되었다. 체는 CIA의 지시로 이게라의 작은 학교에서 총살당했다. 그의 시체는 헬기로 옮겨져 바예그란데의 병원 세탁실에서 공개되었으며 이후 동료들과 함께 공항 활주로에 암매장되었다. 쿠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각국의 협력과 노력으로 암매장된 위치를 찾는데 3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여행정보
바예그란데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우선, 볼리비아의 라파스(La Paz)로 가야 하는데, 한국에서 직항은 없고 3회 경유하는 아메리카나 항공이 있다.
순수 비행시간만 24시간 정도 걸린다. 이후 8∼9시간 버스를 타고 코차밤바(Cochabamba)로 이동한 후 이곳에서 바예그란데행 직행을 타거나 또는 11∼12시간 버스를 타고 산타크루즈(Santa Cruz)에 도착해 이곳에서 다시 8시간 정도 이동해야 바예그란데로 갈 수 있다.
볼리비아의 화폐단위는 볼리비아노(1Boliviano=약 150원)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물가가 가장 저렴한데 바예그란데에서의 식사는 6∼7볼리비아노, 숙소는 30∼40볼리비아노 정도 한다. 문화센터에서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체 게바라 관련 투어는 인원수에 상관없이 200볼리비아노다.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