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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7] 다섯째 날, 높아서 미안

이 글은 다섯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역시, 피곤이 약이다. -_-

어제 약국에서  따뽀네스(귀마개)가 너무 비싸서 사지 못했었는데(1유로도 안한다더니 3유로 짜리만...ㅠ_ㅠ)
(게다가 물통이랑 해를 막을 스카프를 사느라 과다지출을 한 상태여서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아저씨는 여전히 탱크 굴러가는 소리로 코를 골았던 것 같고, 난 코고는 소리완 상관없이 중간에 살짝 깬 걸 빼면
(모르겠다 자꾸 자다 일어나 방안의 상황을-사람들이 잘 자나, 안자나? -,.-;; - 체크를 하게 된다. 불안한 듯)
꿈도 안꾸고 푹 잠을 잤다.

나중에 외국친구들에게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내 경험을 비유했는데 다들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이나 상태에 대한 상대성'이란 깨달음은 얻지를 못하고
해골안의 물에 병균이 있어 원효대사는 죽었을꺼라는 문제제기만 잔뜩 받았다. -_-;

깨달음이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_-;;;

다섯째날,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26km

오늘도 내가 출발하기 전에 대부분 다 떠났다. -_-  (부지런쟁이 바로셀로나 할아버지도~)

분명히 어제 똑같이 잤는데, 어떻게 그렇게 조금만 잘 수 있는 걸까.
잠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흠.

의 출발시간, 7시 30분. (보통, 6시~6시 반에 대부분 떠난다)

[위의 사진] 사진의 사람들은 부부, 나랑 비슷하게 출발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묵었던 곳보다 3-4키로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_-
순례자의 길에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난 항상 추월당했다.


날씨가 흐렸다. [위의 사진] 의 저편, 구름이 있는 곳에 산이 있는데 그 산을 넘어야했다.

산이 시작되는 곳의 땅은 젖어 끈적끈적한 진흙탕이 되어 있었고, 운동화는 푹푹 빠져 들었다.
급기야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자 우산을 펴긴했지만,
손이 자유롭지 않아 미끄러운 곳에서는 균형잡기가 어려웠다.

그 때 나랑 똑같은 상황인 바로셀로나 할아버지를 만났다.

하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 :)

어젠 할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와 상관없이 푹 잤더니 할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
하지만, 나보다 한시간 반이나 먼저 출발한 할아버지를 여기서 보다니!

궁금해서 물었더니 6시쯤 나와 좀 걷다가 길 중간의 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신문을 좀 읽다가 좀전부터 다시 걷기 시작하셨단다.
(놀랍지 않나? 내가 이 대화를 모두 스페인어로 했다는 사실. -.- 뭐, 단어들의 나열이었지만. -_-;;;)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역시 부엔 까미노~ 하고 앞서 가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쵸를 가져 왔는데, 판쵸를 입은 사람들은 통풍이 안되어 불만이 많았다.
난 작은 우산을 들고 왔는데 산을 오를 때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알토 페르돈(Alto Perdon)
산은 피레네 산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지만, 과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알토 페르돈(Alto Perdon)
알토는 '큰(높은)' 페르돈은 '미안'. 뭐야? 높아서 미안해??

하하. 그럼 피레네 산맥은 알토 알파, 페르 돈돈돈돈이겠네. -_-;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니(그래서 중간 사진이 없다),
비는 점점 그치고 정상에 다다른 것 같았다. 코너를 돌자 거센 바람과 [아래 사진] 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상이다.

[위의 사진] 산 정상의 순례자 조형물

 
아아. 이걸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ㅠ_ㅠ

내가 걸어온 길이 저기 멀리 모두 보이고, 출발한 곳은 까마득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아. 내가 이렇게 많이 걸을 수 있다니.
내 짧은 다리의 보폭 한걸음 한걸음이 이렇게 먼 길을 올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산을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또 그렇게 내려갔다.

삶도 그런 것일테다.

[위의 사진] Association of friends, 나바라주의 '순례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기증했다는 글.

뿌엔떼 라 레이나 도착
3시에 도착.  7시간 30분 걸렸다.
1시간에 3.5키로 걸음 셈.

역시나 알베르게는 조용~

다들 시에스타 시간인
2시부터 5시까지 낮잠을 자서
내가 도착하는 시간엔 대부분
잠을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_-;;;

손바닥만한 마을이었는데 길가에 알베르게가 있어
찾으러가고 말고 할 것 조차도 없다.

Albergue De Peregrinos
PP. Reparadores
(1년 내내 오픈) 5유로
주소 : Pza. P. Guillermo Zicke, s/n
TEL : 948 340 050

[왼쪽 사진] 순례자 표시, 조개모양.

[위의 사진] 숙소사진, 흠 누가 운동화를 방안에 둔거야? -_-+

[위의 사진] 쨍한 날씨속에 바삭하게 말라져가는 옷들. 그리고, 운동화

순례자의 길에서의 식사
많은 사람들이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서 음식을 해먹기도 하지만, 식당에서 사먹기도 한다.
메뉴는 단품으로 시킬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아무도 그렇게 안시키고
Menu del Dia(오늘의 메뉴)나 Menu del Peregrino(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는데
이 메뉴들은 전식(보통 샐러드)/본식(다양한 종류-고기,생선 등등)/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보통 7~12유로 정도로 본식 요리에 따라 좀 달라진다.
팁은 대부분 주지 않으며(유명한 관광지의 주요식당에서나 줌) 후식으로 보통 단 음식이 나오는 관계로
나인 경운 카페(에스프레소)를 추가로 시켰는데, 카페 가격은 1유로로 대부분 통일. (간혹 비싼 곳은 1.5유로)

[위의 사진] 이날 저녁에 먹은 음식은 9유로로 좀 비쌌다. 주요리는 미트볼과 감자.
난 감자가 싫다. ㅠ_ㅠ 특히나 저렇게 접시 반이나 되는 감자라니...! ㅠ_ㅠ


[위의 사진] 이 코딱지 만한 마을에 지도가...-.- 오른쪽 위에 1번 부분에 순례자 모습이 있는데
잘 보면 마을을 가로지르는(오른쪽에서 왼쪽, 다리를 건너는  N-111)루트가 보인다.
이러니 전문적인 지도가 없어도 표지들만 잘 따라가면 별 문제없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위의 사진]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
브라질에서 온 사내답게 며칠 뒤에 봤을 때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_-;;;
역시 남미의 피는 속이지 못한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