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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5] 천국과 지옥


이 글은 세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산티아고로 가는 길' 거리(calle가 '길' '거리'라는 뜻)
산티아고로 가기위해 지나치는 모든 크고 작은 마을에는
'Camino de santiago'라는 똑같은 이름의 거리가 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면 이 길이 잘 보이는 집에 살면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구경하며..-.-)
가끔 길을 찾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며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국은 어디에?
체크인을 하고, 샤워용품을 챙기는데 아까 그 영국 할아버지, 켄이 말한다.

" Camino is really wonderful. I can go to heaven everyday.
  I'm going to heaven. ciao~ :)"
 (까미노는 정말 최고야. 난 매일매일 천국에 가지. 난 천국으로 가~ 있다봐~)

하며, 샤워장으로 들어간다.

하하하하하하.
첫날 잘못 든 산에서 만났던 하비르는 샤워가 오르가즘이랬는데, 오늘은 천국이란다. ㅎㅎ

인도의 카주라호에 가면 에로틱 템플이 있는데,
각가지 노골적인 성애의 조각상이 신전에 새겨져 있다.

지금은 인도에서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에로틱한 기氣 받으러. ㅎㅎ)
옛날엔(지금도 어떤 교파에는 남아있다고 들었지만)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성행위를 통한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 의식중에 하나였다는데(서양에도 있었음)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옛날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나름 통하는 게 있다. ㅎㅎ

사실, 그 말이 정말 맞다.
하루종일 걸은 후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은 신의 품에 안긴 것처럼 안락하고
샤워장에 들어가 더러움을 씻어낼 때의 기분은 개운함을 넘어 정화의식의 한 과정같다.
그리고 나서 낮잠자려 침대에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는 것이다. ㅎㅎ

왜 걸어요?
켄 할아버지와 저녁밥을 먹으러 가는데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어기적 어기적 걸으신다.
그래, 이미 700키로나 걷지 않았는가! -_-

걱정이 되서 괜찮냐고 했더니, 조금 걷기 시작하면 다시 정상적인 걸음이 나온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족저근막염'이었던 듯. -_-;
나도 까미노를 걸은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계속 여행을 해야 했으으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무리하면 아직도 아프다. ㅠ_ㅠ 모두 조심할 것.


식사를 시켰는데, 아까 방에서 본 말없는 할아버지 한분이 식사를 하러 오셨다.
바로셀로나에서 걸어오셨다는데, 영어를 못하신다.

합석을 하고 서바이벌 스페인어+영어로 얘기를 나누는데
다들, 나의 서바이벌 스페인어 실력을 칭찬한다. -_- 이상하다. -_-

후식을 먹을 때쯤에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왜 걷게 되었냐고.

두분 다 은퇴를 하셨단다. 
은퇴를 하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단다.

까미노엔 종교적인 성지순례를 목표로 하고 온 사람도 있지만,
켄 할아버지나 바로셀로나 할아버지, 후안처럼 
그런 이유로 걷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도 그랬다. 
 
이것이 지옥이다.
맛난 밥도 잘 먹고, 빨래엔 소나기가 내려 조금 젖긴 했지만 내일이면 마를테다.
대충 짐을 정리하니 나머지 룸메이트들도 잘 준비를 한다.

9시, 모두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잠이 깨어버렸다.
탱크소리가 나고 있는 것. -_-

한국에서도 내가 키우는 강아지 미미는 코를 고는데,
난 내가 코코는 소리를 들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잠을 푹~ 자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끄러워도 잘 자는 편이다. 대신, 불빛이 없어야 하지만. -_-

그런 내가 자다가 일어날 정도니 장난이 아닌 소리인거다.

방안의 침대 8개.
범인을 찾아보니 흠...바로 바로셀로나 할아버지, 후안이다. -_-
차라리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깨웠을텐데...-_-;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커다란 코고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정말 공장의 기계돌아가는 소리같다. -_-

나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잠을 못자고 있었다. -_-;

우리나라에선 코를 골면, 말로 해서 잠깐 깨우던가 베개를 높이던가 하는데...
외국애들은 입으로 '쯧쯧쯧~'소리를 내던가 벽이나 캐비넷을 '쿵쿵~'쳐서 놀라게 만든다.

코고는 소리도 미치겠는데, 애들이 캐비넷까지 쾅쾅치니...짜증이...-_-;;;;

한 3-4시간 동안은 코고는 소리와 캐비넷 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는데,
후안 할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잠깐동안, 한 10분 잦아든 틈을 타,
다른 룸메들이 피곤을 못이기고 게릴라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떻게 자는 줄 알았냐고?

그들이 코를 골기 시작했으니까...-_-;;;;

이제는 오케스트라다. -_-;
켄 할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와 함께 메인화음을 이루며(물론, 후안 할아버지가 최고다 -_-)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 시작한다. 많이 해본 솜씨다..-_-;

나머지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는 보통사람 같았다.
즉, 나도 잘 수 있는 크기였는데....후안 할아버지는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이불을 귓속에 집어넣어보며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앗. 후안 할아버지가 깬 것 같다. 만.세. ㅠ_ㅠ

그러더니, 한숨을 한번 쉬신다.
다른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듯..-_-;

아하하하하하. 이걸 누구한테 얘기하지??? 눈물나겠다.
정말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하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다. ㅠ_ㅠ

그러더니, 다음 액션이 중요하다.

'쯧쯧쯧쯧~'하면서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를 잠재우려 시도를 하신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 피곤해서 눈물나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코를 골았다는 건 모르고,
다른 사람 코고는 소리에 깨서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하시는데...
모든 정황을 다 아는 나는....나는...나는....ㅠ_ㅠ

그나마 내가 이렇게 여행기를 써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니
나름 속이 후련하다는 감사의 인사를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다. 감.사. ㅠ_ㅠ

이후에도 몇 번 그렇게 하시더나 할아버지는 다시 잠이 드셨고,
또...거대한 기계는 굴러가기 시작했다..ㅠ_ㅠ

새벽 5시...쯤 되자
아까 그 캐비넷 소리를 내던 젊은이 두명이 모라고 투덜대더니 짐싸서 나가버린다.
차라리 길이 보이지 않아도(해가 안떳으니) 걷겠다는거다. -_-

얼마나 소리가 싫었으면...-_-;;;;;

나도 거기까지만 보고,
더 이상 피곤을 견딜 수 없어 잠의 나락에 빠졌다.

모를 일이다.
난 핵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며 잤는지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