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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길에서만난사람

<8>라오스 방비엥 - 러시아의 사무라이, 발렌틴


◇ 방비엥의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게 평화롭다.


묘한 차림의 남자가 버스에 올랐다. 젊은 서양 남자인데, 수염을 기르고 꽁지머리를 묶었다. 일본어가 쓰인 통이 넓고 헐렁한 바지에 굵은 가로줄무늬가 들어간 민소매 티셔츠가 튀어도 너무 튄다.

“안녕, 난 러시아의 사무라이야.”

발렌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가 씩씩하게 말했다. 다시 보니, 봇짐 같은 배낭에 기다란 나무칼도 달려 있다. ‘정말 사무라이일까?’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이동하는 루트가 같아 동행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재미있는 친구였다. 러시아에서 국비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서 유학 중이란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 얼마 후 러시아로 돌아가는데, 그동안 아낀 장학금으로 동남아를 여행하는 중이란다. 사무라이가 되고 싶다고 말할 만큼 일본 문화에 흠뻑 빠져 있다. 머리 스타일이며 옷차림이며 심지어 영어를 쓰는 억양까지 일본식이다. 스무 살의 자신에게 아시아는 신선함 그 자체라고 즐거워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갑자기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일본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한국 사람이란다. 내 나이를 묻더니 그 다음부터는 말끝마다 ‘누나’를 깍듯하게 붙이는 것이 여지없이 한국의 남동생 같다.

버스는 베트남의 후에를 떠나 라오스 국경을 통과했다. 다시 한참 뒤에 태국과 인접한 국경도시인 사바나켓에 도착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 내려 태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탄다. 달랑 우리만 남았다. 갈 길은 먼데 우리가 탔던 버스는 버스터미널로 가지 않고, 한 호텔 앞에 섰다. 동남아 차량의 상당수가 이같이 지정된 숙소 앞에 차를 세워 억지로 손님들을 묵게 한다. 수수료를 나눠 갖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호텔 직원에게 버스터미널을 물었지만 본체만체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돼 당황하고 있는데 발렌틴이 한국어로 말한다.

“누나, 가자.”

내 가방을 짊어지며 일어선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가?”

“여기 와 봤어. 길을 알고 있어.”

거짓말이다. 발렌틴도 이곳에 처음 왔다.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뜨거운 해를 피해 낮잠을 자느라 길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발렌틴을 따라나섰다. ‘네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믿음이 갔다.

10분쯤 걸었을까, 우리를 구원하듯 ‘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승합차)이 나타났다. 흥정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캄캄한 새벽의 비엔티안에서 불 꺼진 숙소 하나하나 문을 두드려 방이 있는지 알아본 것도 발렌틴이었다. 혼자였다면 정말 무서웠을 거다. 한참 어린 동생이지만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다음날, 피곤했지만 다시 버스를 탔다. 4시간을 이동하자 배낭 여행자의 지상낙원이라고 소문난 방비엥에 도착했다. 병풍처럼 늘어선 산과 폭넓은 강이 수려한 곳이다. 무엇보다 저렴한 물가로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을 묶어버렸다. 라오스의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고 차와 커피, 바나나를 무료로 제공한다.

◇ 방비엥의 토속시장, 신기한 것들을 판다. 식용 쥐나 박쥐, 개구리 같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던 한국인 친구도 드디어 만났다. 벌써 며칠째 기다리고 있었단다. 이틀 동안 버스에서 시달린 여독을 풀 겸 셋이서 의기투합해 방비엥의 하이라이트인 카야킹을 하러 갔다. 단돈 10달러만 내면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카약 장비, 가이드를 포함한 조건으로 하루종일 카약을 즐길 수 있다. 중간에 튜브를 타며 동굴탐험을 하고, 절벽에서 점프도 해보고, 저녁엔 칵테일까지 제공한다.

◇ 카야킹 중간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 현지 가이드, 발렌틴, 한국인 친구.
◇ 오른쪽 사진은 등산을 하러 강을 건너가려는 발렌틴.

발렌틴은 여자친구에게 멋지게 점프하는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뛰어내렸다. 한 10번은 뛰어내린 것 같다. 듬직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던 발렌틴과의 여행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24개월 동안 복무해야 한단다. 가끔 메일을 보낼 때면 항상 “Nuna, Annyonghaseyo(누나, 안녕하세요)”라고 시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 여행계획은 발렌틴이 제대할 때까지 아껴두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사무라이가 되고 싶어하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배낭여행자의 천국 방비엥

라오스는 동남아에서 관광지로서 개발이 가장 덜 된 나라다. 하지만 순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에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방비엥까지는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버스로 4시간 정도 가야 한다. 낙타등처럼 솟아 있는 특이한 산과 구불구불한 강은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물가도 싼 편이어서 장기체류 여행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방비엥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카야킹과 튜브 레프팅(튜브를 타고 강을 따라 떠내려 가는 레프팅으로,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방비엥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여행자라면 꼭 해봐야 할 레포츠다.

여행정보
타이항공이 방콕을 경유해 비엔티안까지 운항한다. 태국으로 들어가 육로를 이용해 다녀오는 것이 보통인데, 방콕에서 야간열차나 버스로 국경까지 이동한다. 약 12시간이 소요된다. 태국 기차는 침대칸이 있으며 쾌적하고 저렴하다. 라오스에 입국할 때는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국경에서도 손쉽게 국경비자를 받을 수 있다. 수수료는 30달러. 화폐 단위는 키프(KIP). 라오스 대부분 지역에서 달러가 통용된다. 달러와 키프를 함께 사용하면 좋다. 1달러는 약 1만키프 정도다. 환전은 방비엥보다 비엔티안에서 하는 것이 좋다. 방비엥에서 숙소를 잡는다면 3~5 달러 선으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적당하다. 수영장이 딸린 별 3개짜리 호텔은 40달러 선이다. 식사는 5~10달러로 숙박비에 비해 비싸다.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