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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길에서만난사람

<6>인도 자이살메르 - "지나간 일은 떨쳐버려라”

◇자이살메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낙타 사파리. 햇살이 강해 터번은 필수다.


인도 델리에서 600루피짜리 펀자비(활동이 편한 인도의 전통 옷)를 흥정 끝에 450루피에 샀다.
저렴하게 샀다는 뿌듯한 마음에 주변사람들에게 자랑할 겸 괜히 물어봤다.

“이거 얼마 주고 산 것 같아요?”  :)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모두 200루피라고 말했고, 나는 절망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ㅜㅜ

또 다시 ‘Stupid Tourist(스튜피드 투어리스트, 잘 속아 넘어가는 여행자들을 일컫는 말)’가 된 것 같아
그 옷을 옷을 입을 때마다 우울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이살메르의 한 옷가게를 구경하게 됐다.
가게 주인의 이름은 삔뚜.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똑똑한 그에게 감동한 한 유럽 여성이 양엄마를 자처했고,
그녀의 도움으로 조그만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차이(인도 전통차) 한 잔을 대접받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격’(Friend prices)으로 옷을 샀다.

가게를 나와 걷는데 가게와 조금 떨어진 곳에 똑같은 옷이 있어 가격을 물었다.

놀랍게도 내가 산 것보다 100루피가 넘게 저렴한 가격이 아닌가!

또 속았다..ㅠㅠ

‘친구’라서 깎지도 않고 옷을 샀는데, 바가지를 씌웠다는 게 너무 화가 나 그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바로 따지러 갔다.

◇ 조각천을 이어붙여 만든 자이살메르의 기념품.(왼쪽)
◇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자이살메르의 중심가. 멀리 자이살메르 성이 보인다.


“난 너를 믿었는데, 친구라면서 어쩜 그럴 수가 있니?”

검고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20살의 브라만 청년 삔뚜가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옷은 다른 집 옷과 비교해 천이나 박음질이 달라. 
 내 누이가 만들었거든. 난 정말 네게 친구가격으로 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마음이 흔들린다. 정말 그런가 싶다.

어른이라 말하지만 얼굴은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삔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정말 진지하게 충고하는 거야. 인도는 정해진 가격이란 게 없어.
 물이나 공산품처럼 가격이 표시돼 있는 거 빼고 말이야.
 상인들은 물건을 사지 않았다고 해서 걸어나가는 너의 목을 잡고 칼을 들이대며 
 200루피 내놔!’라고 할 수 없는 거야. 
 항상 칼자루는 네게 있어. 네가 마음에 안 들면 사지 않아도 되는 거야. 
 반대로 네가 물건을 샀다면 그다음부턴 누가 뭐래도 귀담아듣지 마.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의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했고 틀린 것 같기도 했다.

“인도사람들은 너무 뻔뻔하게 속이고 바가지 씌우는데, 이젠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나!
 ‘친구’라는 좋은 말을 장사에 써먹는 건 믿음에 상처를 주는 거라고…”

나는 이제껏 받은 상인들로부터의 상처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삔뚜는 검은 눈동자로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말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사랑해.”

◇자이살메르 성에서 내려다 본 시내.


“뭐… 뭐라고?“

정말이지 당황해버렸다.

“사랑한다고.”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그런 느낌이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겨우 20살인 너와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은데다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남자는 결코 신뢰할 수 없어!'라고
마음을 다지며 잠시 중단됐던 말을 이어갔다.

삔뚜는 내 이야기를 듣는 건지 내 얼굴을 보는 건지
한참을 빙글빙글 웃으며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하하하. 얘기하는 데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방금 나의 신, 가네시(상업의 신)에게 부탁했어. 
 다음 생에 너를 내 부인으로 달라고 말이야.”

순간 그의 까만 눈동자에 빨려들어가 잠시 멍해졌다.

‘안 돼, 말도 안 되는 이런 말에 넘어가선 안 돼!’ 대충 하던 말을 얼버무리고
갈 데가 있다며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바가지를 씌웠다고 따지러 갔다가 제대로 화도 못내고,
다음 생에 삔뚜랑 결혼할지도 모르게 돼버렸다. 제길.

‘하필, 눈이 그렇게 예쁠 건 또 뭐람!’ 

인도 상인들은 정말 강하다.

인도 자이살메르(Jaisalmer)

라자스탄(Rajasthan)주의 도시로 델리에서 서쪽으로 864km 떨어져 있다. 사막을 두고 파키스탄과 인접해 있다. 여름 최고기온은 섭씨 41.6도, 겨울에도 25도 정도를 유지한다. 연간 강수량은 150mm에 불과한 광범위한 사막지역이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이 사막을 체험하기 위해 자이살메르를 방문한다. 마을주민 역시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76m 높이로 우뚝 솟은 자이살메르 성은 1156년에 만들어졌다. 박물관으로 보존되는 다른 지역의 성들과 달리 성 내부에서 주민들이 살고 있어 색다르다. 성 안의 자이나교 사원(Jain Temple)도 유명하지만, 해질녘 성에서 보는 주변 모습은 자이살메르가 왜 ‘골든 시티’라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 주민들에게 선 셋 포인트를 물어보면 쉽게 알려준다. 놓치지 말고 꼭 보길 바란다.

여행정보
인도 방문에는 반드시 사전 비자가 필요하다. 인도대사관에서 만들 수 있으며, 접수 다음날 받을 수 있다. 인도 취항 항공사가 많지만, 인도항공과 일본항공이 저렴하다. 교통은 기차가 편리한데, 델리의 올드델리 기차역에서 약 20시간이 걸린다. 보통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기차의 종류는 2등석 슬리퍼와 3등석 AC이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길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심하다.

기차역 앞에 숙소를 연결해 주는 호객꾼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부분 낙타 사파리를 취급하는 곳이어서 왕복 교통과 낙타 사파리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호텔 가격을 할인해 준다. 낙타 사파리 비용은 1박2일에 600∼1000루피(1루피는 약 25원). 낙타를 타는 시간, 들어가는 지역, 텐트 제공 여부, 물·식사의 수준 등 조건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꼼꼼히 따져야 한다. 식사는 탈리(인도식 가정식)가 20∼30루피, 인터넷은 1시간에 20∼50루피.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