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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길에서만난사람

<2>이란 테헤란 - "너의 두려움이 두려움을 부르는거야”

이 글은 세계일보에서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꼭지로
2007.7.19~2009.3.19일간 연재했던 글입니다.
신문에 썼던 글이라 조금 딱딱한 부분은 조금 수정했습니다. :)


◇ 가족외에는 같이 탈 수 없는 테헤란 지하철의 여성전용칸.
앞쪽의 꽉 찬 남성 전용칸과 달리 비교적 한산하다.



 

터키의 반(Van)에서 어렵사리 이란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했다.

한 역무원은 로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도 기차표를 구하고 있는데 너에게만 특별하게 표를 주는 거야”라고 눈을 찡긋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며 나를 조용히 역무실로 불렀다.

그런데 한 손으로는 표값을 내미는 내 손을 잡고선, 갑자기 다른 손을 엉덩이 쪽으로 슬쩍 가져다 대는 게 아닌가. 제길슨. -_-

평소 같으면 경찰을 부르며 가만있지 않았겠지만, 정말 구하기 힘들었던 표라 돌려 달라고 할까봐 엉덩이를 빼고 손을 뿌리치는 선에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건넨 차를 마시며 역무실 한쪽 구석에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며 분노를 삭이다, 이내 핑계를 대고 역 로비로 빠져나와 버렸다.

얼마 후 반 역에서 한 무리의 이란인 무역상들을 만났는데, 정말 너무 친절했다. 침대칸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고, 밥을 사주고, 국경에서 여권검사를 더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 중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한 남성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는 국경을 조금 지난, 타하린(Taharin)이란 도시에서 내려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치과의사이며 결혼해 딸이 하나 있고, 터키가 이란보다 경제 수준이 높아 터키로 일자리를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부인과 딸에게 줄 선물을 보여주며 자기 집을 방문해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뭔가 이상했다.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예 자기 짐을 내가 있던 기차 칸으로 옮기질 않나, 함께 테헤란에서 내리겠다며 티켓을 바꾸지 않나.(테헤란은 그의 목적지에서 10∼12시간을 더 가야 한다.) 뭔가를 바라는 눈치다. 아닌게 아니라 테헤란에서 함께 호텔을 구하자며 이내 속내를 드러냈다. ‘나 원 참. 기차역에서도 그러더니 오늘 일진이 정말 왜 이러는 거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고 있을 때, 마침 차장이 나타나 “가족 외에는 남녀가 같은 칸에 머물 수 없다”며 나를 여성 전용 칸으로 옮겨주었는데, 그곳에 바로 부우가 머물고 있었다.

이후에도 그는 몇 번이나 여자 칸의 유리창을 노크하며 귀찮게 굴었다. 노골적으로 화를 내도 막무가내였다. 참다 못한 부우가 나가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싫다잖아! 저리 가!” 그녀는 매섭게 쏘아붙였고, 그는 결국 기차의 한쪽 끝에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우는 갑자기 “너 스스로 그들을 부르는 거야”라고 내게 말했다.

◇ 키프로스인 부우. 자신이 직접 손으로 깎아 만든 나무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다.

“무슨 소리야?”

“네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들이 네게 다가오는 거라고. 마치 도망가면 더 쫓아오는 개나 벌처럼 말이지.”

키프로스인인 그녀는 채식주의자이자 히피였다.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이라면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머리도 식초로 감고, 직접 만든 나무숟가락을 이용했다. 음식도 배를 채울 정도만 먹었다. 그리고 히피들의 자연친화적인 축제인 레인보우(Rainbow) 페스티벌에 대해 얘기해 줬다. 히피들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낸다고 했다.

◇ 로사리(스카프)는 히잡을 써야 하는 이란 여성들이 그나마 멋을 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
한 여성이 화려한 로사리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음, 축제에서는 돈이 필요할 때 서로 갖고 있는 만큼,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낸다고 했잖아. 그런데 모두 돈이 없어서 필요한 만큼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을로 나가서 공연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지. 그럼 사람들이 돈을 줘. 그 돈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사는 거야.” 터키의 어느 산에서 열렸던 레인보 페스티벌은 이제 전 세계를 돌며 열리고 있단다. 그녀는 터키에서 만났던 이란인의 집에 간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두려움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들이 몰려든다는 말을 떠올린다. 요즘 몸이 안 좋아 한의원에 다니는데 침이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한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침이 아픈 게 아니라 침이 두려운 거죠.”

..... 난 언제쯤 이 두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란에서 만났던 부우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조금 보여줬다. 레인보우 캠프에 참가해 보고 싶다.

이란의 테헤란
이란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은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1979년 이란혁명을 계기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혁명을 주도했던 종교·정치적 지도자 호메이니는 미국을 견제하며 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독립 국가를 건설했다.그러나 여성의 인권은 크게 악화됐다. 혁명 이전 ‘미니스커트’를 입었던 여성들이 지금은 검은‘차도르’를 써야 한다.

13세기 초에 건설된 테헤란은 셀주크 왕조, 사파위 왕조를 거쳐 팔레비 왕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특별히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지만 국립박물관에서는 페르세 폴리스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셔널 팔라스와 카펫 박물관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란산 카펫을, 보석박물관에서는 화려한 보석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정보
이란항공 등 몇몇 항공사가 인천공항에서 테헤란까지 직항 운행한다. 짧은 여행이라면 이란 공항에서 7일짜리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다. 터키 등을 통한 육로 입국은 반드시 사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외국 여행자도 여성은 반드시 히잡(hejab)을 착용해야 한다. 여성은 손과 얼굴을 제외하고는 맨살을 드러낼 수 없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도 입을 수 없기 때문에 옷차림에 주의하지 않으면 종교경찰에 끌려간다. 남자인 경우는 반바지나 민소매만 입지 않으면 된다.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현금으로 환전해야 한다. 화폐단위는 리알(Rial, 1000리알은 약 100원). 저렴한 호텔 싱글룸은 5∼10달러, 서민 식당은 2∼5달러 정도다. 석류, 말린 무화과, 호두 같은 견과류가 품질이 좋고 저렴하다.

* 레인보우 페스티발 정보(위키디피아) : http://en.wikipedia.org/wiki/Rainbow_Gath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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