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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10] 여덟째 날, 빈대에 물려


이 글은 여덟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내 손을 잡으렴.

뭔가에 물린 상처가 점점 더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사실은 이틀 전, 에스테야에서 시에스타(낮잠)를 즐겼을 때
짧은 티를 입고 자서 허리가 좀 드러나 있었는데 일어나 보니 뭔가가 물었다.
허리뿐만 아니다. 팔과 목과 가슴 사이에도 드라큘라 이빨자국 같은게 나 있었다. -_-

처음엔 모기나 개미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렵고 부풀어 오르고
걷는 동안 뜨거운 열기에 몸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더 미친 듯이 가렵기 시작했다.

아아. 경험상 이건 아무래도 벼룩이나 빈대인 것 같아. ㅠ_ㅠ 털.썩.
나쁜 자식들! 나쁜 자식들!  

여덟째날, 비아나(Viana) 19.5km

[위의 사진] 마을은 오아시스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사막과 같다.
먹을 물도, 음식도... 그리고, 사람냄새도 없다.

오늘은 산도 없고, 거의 평지만 있다. 게다가 어제보다 더 짧은 19.5km
7시 10분 출발해 12시에 도착했다. 4시간 50분 소요.

어제 같은 방 룸메이트였던 델핀과 델핀의 아빠,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걷게된 프랑스 할머니와 함께
비아나의 성당에 들러 도장을 받았다. 그리곤, 이곳의 숙소에 대해 물었더니 두 곳이 있다면서
두 곳 다 들러보며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라신다.

먼저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위의 사진] 성당을 보고 왼쪽에 붙어있던 알베르게

[오른쪽 사진] 알베르게의 발코니에서 바라본 광장.

정오인데도 캄캄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발코니가 있는 있는 거실과 주방, 식당, 샤워, 세탁실이
보이고 한층 더 올라가니 순례자용 숙소가 나왔다.

헉. 그냥 텅빈 공간 한편에 얇은 매트리스가 쌓여있다.

여기서 자라고? -_-;;;

난 다른 곳으로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델핀의 아빠가 말한다.

"우린 좋아요!"

"안되겠어." 라고 말했는데
델핀이 고양이 눈으로 쳐다본다. -_-;;

난 이틀 전의 벌레물림으로 더러운 곳 노이로제에
걸려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 매트리스는
화학커버로 씌여있어 어쩌면 그냥 매트리스보다 더
안전할 것 같아보였다. (벌레가 없을 수도)

머물겠다고 말하니, 모두 기뻐한다.

음. 일단 물티슈로 매트리스를 닦고 'Anti Insect'스프레이(약국이나 슈퍼에 가면 판다. 뭐 거의 소용없지만)를
뿌렸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고 씻고 빨래를 했다.

이 알베르게는 도네이션제이고, 저녁과 아침을 준다고 했다. (와, 이런 알베르게 처음이야! +.+)
게다가 세탁기도 사용할 수 있다! (좋아좋아!) 샤워실이 한명인가 두명용도라 작긴했지만 밥을 준다는데! 뭐!

델핀과 사람들은 먼저 씻고 구경한다고 나간다.
점심을 먹으려 괜찮은 식당을 물으니 Pitu로 가랜다.

[오른쪽 사진] 성당 옆 골목에 있는 삐뚜. 안먹어봤다.

발코니에서 전망을 잠시 즐기다(정말 예쁘다!)
세탁실 때문에 뭘 물으러 할아버지가 계신 주방에
잠깐 들어갔더니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친구가 좀있다가 올껀데 나보고도 먹겠냔다. 헉.

좋다. *-.-* 네네네네.

사실, 내가 요즘 사람들에게 만들어주고 있는
스페인식 샐러드는 이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정말이지,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

할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상추와 토마토를 썰어 커다란 접시에 올려놓고
올리브팩을 따서 올리브를 저민 식초와 함께 부은 후
넉넉한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조금 쳤다.

그리곤, 냉장고에 조금 넣어뒀다.

우리나라 남자들도 젊거나 나이드셨거나
저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준비를 할 수 있다면 정말로 사랑받을텐데... 흠흠.

함께 점심식사를 하실 친구 분이 오고 빵과 스프 -> 샐러드 -> 메인인 생선 요리를 먹었다.

맛나다고 했더니 수줍게 웃으시는 할아버지. 너무 귀여우시다. ㅎㅎ
설거지를 했더니 옆에서 손 닦을 수건을 들고 비서처럼 대기 중. 매너도 짱. (사실 좀 부담)

유럽은 유교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할아버지라도 남자는 남자. 여성에게 정말 깍듯하다.


부른 배를 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나갔다.

[왼쪽 사진] 다른 알베르게. 이쪽이 규모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묵었는데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3단 침대라 상당히 답답하단다.

저렴하지만 달고 맛있는 순례자들의 간식,
복숭아를 3개 샀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모두 숙소 밑의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허리에 물린 상처가 좀 심각하게 부어올라
허리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_-

아일랜드인인 나일이 자기가 크림을 갖고 있다면 빌려줬다.

쪽팔려
일단 임시처방으로 크림을 발랐지만 아무래도 약이 필요하다.

알베르게 할아버지에게 또 허리를 보여주며(-_-;)
어떤 약을 사면 되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큰일났다며 병원에 가야한다고 하신다.

괜찮다고 하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워낙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내 팔을 끌고 광장으로 나갔다. 일단, 광장 옆의 바에 가서
바 주인에게 내 허리를 보이신 후 호들갑스럽게 큰 소리로 말했다.
(스페인어라 모른다. -_-; 뭐 뻔하겠지만... "얘 좀 봐. 큰일난 것 같지 않아? 뭔가에 물렸대...분위기)

바 주인도 심각한 얼굴을 하며, 주변의 손님들에게 얘기한다. -_-;;;;
허리를 보여주고 음료수 한잔을 얻어마신 후(뭐야..이거..-_-;;) 이번엔 광장 중앙의 노천카페로 끌려 갔다.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는 또 나의 옷을 들춰 허리를 보여주며...--;;;
큰 소리로 아까와 비슷한 말을 떠들어댔다. 자, 난 이쯤에서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_-

대낮에 노천광장 가운데서 허리를 들추며 큰소리로 벌레물렸다고 떠드는데...잉. ㅠ_ㅠ
동네방네 소문 다 내시고...모야...흑. ㅠ_ㅠ

사람들은 분명히 에스테야에서 물렸을 거라고 했고, 그게 맞았다.
에스테야에서 많이들 물려서 온다고 했다. (음...그 멋찐 알베르게에 벌레가 득시글한다 이거지...-_-;;;)

할아버지의 호들갑 덕분에 병원에 갔고, 예약도 없이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의사를 만났고
알레르히야, 알러지라고 했다. -_- 그냥 약국에서 크림과 먹는 약처방. 총 16.05유로 듬. ㅠ_ㅠ (비싸)

어찌나 할아버지가 신경 써 주시는지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

아까 크림을 빌려줬던 나일은 노천광장에서 카푸치노를 여유있게 즐기고 있다.

"아까 고마워, 네 크림덕분에 많이 가라 앉았어."
(사실, 그의 크림이 더 효과가 좋았다. 아까 준다고 했을 때 그냥 받을 껄. 완전 후회. ㅠ_ㅠ
 영국꺼였는데, insect라고 써 있고 벌레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효과 짱!)


며칠 전 탱크 코골이 할아버지 후안도 저쪽의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어 반갑게 인사했다. ^^
(실은 다른 알베르게에 있어 안심이 되서 반가웠던데 아닐까...ㅎㅎ)

순례자들이 더 들어왔고 방은 7명으로 어느새 가득찼다.
국적도 다양. 슬로베니아에서 히치하이킹을 한 후 이곳까지 걸어온 로까.
분명히 무거울텐데도 기타를 가져다닌다. -.-

이후에도 자주 만나게 된 생긴 델핀과 그녀의 아빠. 그리고, 함께 다녔던 프랑스 할머니.
아일랜드 사람은 무조껀 좋아...라는 편견을 갖는데 일조를 한 아일랜드인 나일.
(아일랜드 사람은 정말 한국사람같다!) 이후에 내 마음에 쏙 들게된 28살의 헝가리 언니.
모두, 차차 이야기해 주겠다. :)

함께 먹은 저녁식사도 훌륭했다. 얼마만에 가정식이야!!! ㅠ_ㅠ
식사자리엔 스페인어+영어 로 의사소통이 되었는데 모두 낱말 맞추기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말하며 이해했다.

지금와서 생각하지만, 이 날의 알베르게가 가장 작았고 가장 따뜻했다.


[왼쪽 사진] 알베르게의 할아버지와 나.

다음 날 아침에 떠나기 전에 한 컷 찍었다.
아침이라 눈과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_=

내 지팡이에 이름을 새겨달라고 부탁한 첫 번째 사람이다.
(나중에 지팡이 포르투갈 리스본 화장실에 두고왔지만..ㅠ_ㅠ)

떠날 때 쯤엔 고작 하루였는데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직도 비아나에 계실까?

 2007. 6. 25(2010.2.15 업데이트)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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