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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아메리카여행 정보

세계여행에서 만난 체 게바라-(3) 볼리비아, 혁명가의 죽음



<볼리비아, 바예 그란데>
체와 그의 친구들이 30년동안 암매장되었던 장소로 가는 길

 

볼리비아, 혁명가의 죽음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여행자들에게는 물가가 저렴해 남미에서 가장 부담없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한 곳입니다. =_=


바예그란데로 가는 길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즈(La Paz, peace '평화'라는 뜻)에서 며칠을 지내고
체 게바라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바예그란데로 떠나기로 한 날, 
끝난다던 총파업은 그 날도 지속되어 모든 시내&시외 버스 노선은 마비되었습니다.

터미널의 누군가가 어디로 가면 시외로 가는 차를 탈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군복을 입은 사람이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더니 제게 번호표를 나눠 주며 몇시까지 오랍니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건물에 도착하니
연병장같은 넓은 마당에 줄을 세워 앉게 합니다.
티켓은 얼마냐니까 공짜라네요. +.+ 우아~

[오른쪽 사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가 타고 갈 차량에 대해 언급하길
'오토 부스(Auto Bus, 버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까미욘(
camión)'이라 말해 뭔지 몰랐는데...
차가 도착했다길래 사람들과 함께 줄서서 따라갔죠.
코너를 돌자마자 나타난 것은 바로...
'트럭'이었습니다. -_-;;; [아래 사진]


아... 트럭이라는 스페인어만 미리 알았어도...ㅠ_ㅠ
남미의 기본적인 이동시간을 대충 알기에
이런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_-

파업 기간동안 그냥 라파즈에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하고 돌아서려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카메라들의 플래쉬 세례...-_-;;

카메라는 찍고, 까미욘에 오르라며 군인은 제 팔을 잡고,
뒤에 사람은 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까미욘에 오르게 됩니다. ㅠㅠ

[위의 사진] 까미욘 안에서...


의자도 없는 그냥 딱딱한 나무 바닥.
양 옆은 높게 쳐져있어 밖을 내다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부에서 차량을 내어 줬다며
박수를 치고 환호합니다. 전, 죽고 싶습니다. ㅠㅠ

소랑, 돼지랑, 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체감할 수 있었던 까미욘. 아아, 절대로 잊지 못할 까.미.욘.

[왼쪽 사진] 중간에는 비까지 와서 천막도 칩니다.
해가 지자 천막 안 까미욘은 완전 어둠 속에 묻혀
정말 짐짝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엉덩이의 살이 다 닳아없어지고,
엉덩이 뼈가 흔들리는 까미욘 바닥과의 마찰로
갈려지기 시작하자... 꼬차밤바에 도착찹니다. 
도착한 시간은 자정, 9시간 동안의 이동.

까미욘에서 내리면 제일 가까운, 제일 비싼(볼리비아에서 비싸봤자...-_-;) 호텔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자겠다는 계획은....
시내로 들어가기엔 위험하다는 군인들의 제지에 수포로 돌아가고
까미욘에서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또, 까미욘이라니...ㅠ_ㅠ

다행히 조금 높아 보이는 군인아저씨가 저를 보고
매트리스를 가져다주는 급친절을 보여 그나마 가장 편하게 잘 수 있었어요.

[오른쪽 사진] 돈을 아껴야하기 때문에
"까미욘 안에서 당연히 자야지~ +.+"하며 도착하자마자 
해먹을 꺼냈던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남자 2명, 프랑스 여자 2명.

이들은 여행도중 만나 밴드를  만들었는데 
함께 여행하며 노래를 부른대요.
물론, 까미욘 안에서도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줬죠.

까미욘에 탄 우리들 중에 가장 힘들게 간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어린 군인들 이었어요.

각각 까미욘의 모퉁이에 서서 총을 들고 보초를 섰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볼리비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자를 돌려
돈을 모아 군인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따뜻해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라 보였어요.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데 말이죠. :)


다음날 아침이 되고, 다행히 파업이 풀려
꼬차밤바->싼타 크루즈,
싼타 크루즈->바예그란데행 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왼쪽 지도]를 참고하세요~

정리하자면,
바예그란데로 가는 방법은
1. 라 파즈->꼬차밤바(8~9시간,
25볼리비아노),
2. 꼬차밤바->싼타 크루즈
    (12시간, 볼리바르 부쓰까마
50),
3. 싼타 크루즈->바예그란데
    (7시간 30분,
35볼리비아노)

또는 2번의 꼬차밤바에서 드물지만 직행이 있구요,

다른 방법으로는,
라 파즈->우르노(Ourno)->바예그란데
방법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바예그란데(Vallegrande)

1966년(또는 67년), 볼리비아에 도착한 체 게바라는 콩고보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 게릴라 전을 펼칩니다.
그러다 1967년 10월 7일, 츄로 계곡 전투에서 정부군에게 생포되어 이게라(La Higuera)의 작은 학교로 옮겨집니다.
그 다음날인 10월 8일 미국의 CIA는 체를 제거할 것을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지시하고,
10월 9일 아무런 재판과정 없이 체 게바라와 그의 동료들은 총살당합니다.


체의 시체는 헬기로 바예그란데로 옮겨져 10일날 한 병원의 세탁실에서 공개되었는데요,

체 게바라는 당시 신출귀몰한 게릴라 영웅이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꺽기 위해서는 시체공개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부검이 끝나고 아무도 모르게 매장당한 체와 동료들의 주검은 30년간 찾을 길이 없다가
쿠바와 아르헨타나의 합동 발굴팀에 의해 1997년 7월, 바예그란데의 공항에서 발견됩니다.
이들은 주검은 현재, 쿠바의 산타 클라라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1. 체 게바라 루트 시립 박물관(Museo Municipal Ruta del Che Guevara)
바예그란데에는 까사 무니시팔 데 꿀뚜라(Casa Municipal de Cultura, 시립문화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체 게바라 투어(스페인어, 인원수에 관계없이 200볼리비아노)를 진행합니다.
주변 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위의 사진] 까사 무니시펄 데 꿀뚜라(시립 문화 센터)


    [왼쪽 사진]
    체 게바라 루트 시립박물관
    (무세오 무니시팔 루타 델 체 게바라)

    요금은 일반 10, 학생 5볼리비아노

    작은 마을이고, 관광객들도 별로 없는...
    딱히 여는 시간이 정해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로
    저는 몇 번을 방문해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 박물관 내부 모습, 함께 투어를 했던 스페인 여행자가 보이네요.

다행히 내부 설명은 스페인어, 영어 공용입니다. 궁금한게 많았는데
제 짧은 스페인어 실력이 너무너무 안타까웠던 곳. ㅠ_ㅠ 더 열심히 공부해둘 것을...흙.

[위의 사진] 1967년에 사망한 게릴라, '하이메 아라나 깜뻬로'가 신었던 신발.

이거 보고 너무 충격받았어요. --; 이 샌달을 신고 정글에서 게릴라전을 했다는 사실에...
체 역시 이런 신발에 양말을 여러개 겹쳐 신었다고 합니다.


2. 말타 병원 세탁실(L
avandería del hospital Nuestro Señor de Malta)

체는 이게라에서 처형당한 후, 헬기로 바예그란데로 옮겨집니다.
비행장에서 옮겨져 병원으로, 그리고 병원 세탁실에서 언론사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다시 세탁실 맞은 편의 건물에서 부검되었죠.
이 병원은 아직도 사용되고 있고, 세탁실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고, 조용히 병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위의 사진] 세탁실의 모습
세탁실 뒤에 똑같은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건 영화촬영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요.

[위의 사진] 체의 주검이 올려져 있던 곳.
중남미는 이렇게 돌로 만든 곳에서 서서 빨래를 해요.
곳곳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빼곡히 적어놓은 글이 보이네요.

[위의 사진] 실제 사진의 모습.

[위의 사진] 세탁실 벽면 역시 사람들의 글로 가득합니다.
한국사람의 흔적도 볼 수 있었어요.

설명을 들으며 세탁실을 살펴보는데 정말 화가 났어요.
그리스&로마 시대의 영웅이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수장도 죽일 때는 예를 다하는데,
아무런 재판과정도 없이 일개 어린 군인에게 돈을 쥐어주고 술을 먹여 총살 시키고,
시체를 병원 실내도 아닌 세탁실에서 공개한다는 게 도대체 개념이 있는 사람들인건지...-_-;;

그리고 부검을 한 뒤, 그를 죽였다는 증거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미국에 보내고
체의 그의 동료들의 시체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하여 30년, 그렇게 30년 동안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3. 비행기장, 체와 그의 동료들이 매장당한 곳(Fosa Guerrilleros Aeropuerto)
30년동안 아무도 체와 그의 동료들이 어디에 묻혀있었는지 몰랐다죠.
1997년 드디어 쿠바&아르헨티나 발굴팀에 의해 이곳에서 발견됩니다.
이들의 주검은 쿠바의 산타클라라에 옮겨져 있지요.

제가 혼자 찾아갔을 때는 문 앞에 시립 문화센터를 컨택하라고 써있고 문이 잠겨져 있는데요,
그곳이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하니까 거기 계신 분이 그냥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입장료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문을 항상 잠궈놔요.
투어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심가에서 걸어서 15분.

[위의 사진] 비행기장, 체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된 곳. 건축물을 세워 놓아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 '30년동안 체와 6명의 게릴라들이 묻혀있던 곳'이라 써 있네요.

[위의 사진] 안쪽의 모습. 땅을 파서 시체를 매장한 장소입니다.
체와 6명의 게릴라들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 1967년 10월 9일 이게라에서 사망, 아르헨티나&쿠바인이라고 써져 있네요.

이게라 (La Higuera), 체의 죽음
츄로 계곡 전투에서 생포당한 체와 동료들은 이곳 작은 학교에 붙잡혀 있다가
CIA에서 내려온 사형 명령으로 아무런 재판 절차 없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이게라로 가는 교통수단은 투어차량이나 택시 밖에 없어 비쌉니다.
편도 2시간이 걸리고 왕복요금은 1인당이 아니라 한 차(4~8인승)에 150.(깎으면 140정도)

학교에서 숙박도 할 수 있는데, 1박에 15볼리비아노.
물론,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은 그닥 좋지 않아요.
(이곳에서 머물렀던 여행자들은 아예 샤워는 포기하고 지냈더라구요~)

제가 갔을 때는 쿠바에서 온 의사 두명이 학교에서 사람들과 함께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는데 의사로 자원활동을 하러 왔대요.

 
[위의 사진] 이게라 입구의 체 게바라 동상.


[위의 사진] 마을 벽면엔 모두 체의 초상이...

[위의 사진] 체가 살해당한 작은 학교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요. 요금은 일반 10, 학생 5볼리비아노.

[위의 사진] "체와 윌리, 치노가 이곳에서 갖혀있다 10월 9일 처형당했다."라고 써 있네요.

 [위의 사진] 내부의 모습

[위의 사진] 게릴라전을 펼쳤던 체의 루트, 며칠짜리 투어도 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이곳에는 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아르헨티나, 쿠바, 볼리비아만 소개했지만
그가 여행하고 활동했던 중남미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6개월간 여행했습니다.
아직도 중남미에는 게릴라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기도 했었죠.

대학교 시절, 빨간 책에서 처음 만난 흥미로운 사람이었던 체가
그의 흔적을 찾아다녔던 시간을 통해
이제는 가슴깊은 곳에서 존경하고 사랑해마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체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 말했다지요?

세상에는 생각만하고, 말만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 생각과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수천가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가깝게는 여러분 주변이나 또 멀게는 세계 곳곳에
아직도 체 게바라처럼 자신의 생각과 말을 행동으로, 그리고 실천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슴엔 주제는 다르지만 공통된 '열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실천하지 않고서는 못배겨낼 만큼 뜨겁기 때문에
심장이 향하는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세계는 이들이 있어 진보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은 지금, 어떠신가요? :)

[세계여행에서 만난 체 게바라] 연재글 읽기
(1) 아르헨티나, 그의 조국 : 체 게바라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
(2) 쿠바, 혁명의 나라 : 혁명의 완성, 쿠바.
(3) 볼리비아, 혁명가의 죽음 : 쿠바를 떠나 게릴라전을 펼치다 맞은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