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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34] 서른두번째 날, 하루 전 날


이 글은 서른두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양은 겁이 많아 모여있는 걸 좋아한다.
앞을 보고 걷기 보다는 바닥을, 고개는 항상 푹 숙이고 바로 앞의 양의 엉덩이만 졸졸 따라 간다.
양처럼 살면 이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


벌레 스트레스
갈리시아에 온 이후론 밤마다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어제도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순례자들은 보통 9~10시쯤 잠. -_-)
새벽에 벌레가 물어 깨고 말았다. ㅠ_ㅠ

세어보니 이번엔 8군데다. 그래도 몇십군데는 아니라서 다행인건가? ㅠ_ㅠ
한숨을 쉬며 약을 바르고 긴팔 모자티를 입고 지퍼를 채운 뒤 다시 잠들었다.

잠시 뒤... 이번엔 땀에 온몸이 다 젖어 깨고 말았다. ㅠ_ㅠ
졸리운데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이처럼 짜증이 난다.
화장품 케이스 뚜껑으로 부채질을 하다 졸다 떨어뜨리다를 반복하며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불을 켜서 일어났다. 7시 20분이다.

정말이지 이제 벌레 스트레스는 한계에 다달았다.

산티아고에 가면 알베르게엔 절대로 가지 않을꺼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물론, 오늘도 방에서 맨 마지막으로 나왔고,
길가의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엔 크로와상과 커피, 그리고 쥬스다. 3유로가 좀 안된다.

 [위의사진] 맑은 공기를 선사하던 숲길

 [위의사진]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

그런데 아직 덜 익었다. ㅠ_ㅠ
늦여름에 걷는 사람들은 공짜로 맛볼 수 있을 듯.

 [위의사진] 이제 33km남았다. 숫자가 예뻐서 찍었다. :)

표지는 이제 0.5km~1km간격으로 남은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사진] 시원하게 펼쳐진 옥수수밭

 [위의사진] 그리고, 예쁜 꽃이 펼쳐진 길

 [위의사진] 귀여운 지도

 [위의사진] 꽃 색깔이랑 창문의 커튼 색깔이 잘 어울린다.


서른 두번째 날, 아르카 오 피노(Arca O Pino) 22km
8시 10분 출발, 1시 50분 도착.
5시간 40분 소요.
거리에 부담이 없어 천천히 걸었던 날.

100km부터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주기 때문에
100km가 시작되던 며칠전부터 사람도 많이 늘고, 처음 걷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덕분에 내가 마치 워킹머신(walking machine)이나 된 듯 사람들을 추월하고(세상에, 이런일이!+.+)
생쟁부터 걸었다는 나의 말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있다. -_-;;;
(다른 순례자들이 들으면 우스워할 것 같아 앞으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_-;)

[위의사진] 하루 전날 묵었던 알베르게.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순례자들도 두근대는 심장에 잠이 잘 오지 않는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두근증은 사실 일주일쯤 전부터 시작됐다.

산티아고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은 당연히 설레는 일이었지만,

(이제 곧 이 지긋지긋한 벌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도 매우 기쁜 일이었다. -_-)
산티아고에 가까이가면 갈수록 순례길이 끝난 이후가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중에 생일 선물로 준 한달 도보여행이 예상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시간 내에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다.
거리는 먼데 시간은 없고... 정말, 집엔 어떻게 가야하나... -_-;;;;

순례자의 먹고, 자고, 걷는... 근심걱정없는 '심플 라이프'에서
다시 복잡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다니...

앞이 캄캄해진다. ㅠ_ㅠ

아아아아.
몰라~몰라~

어찌됐건 내일부터는
날마다 잠자기 전 항상 준비하던
다음날의 루트를
포스트잇에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난 당연히 산티아고에 있을 테니까.


왼쪽부터
3.99유로, 6.3유로, 4유로.
종류도 많잖아? =_= 산티아고에서 한국으로 왔으면 이걸 사는건데...아쉽다. -_-

2008. 11. 7(2010.4.12 업데이트)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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