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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35] 서른세번째 날, 산티아고


이 글은 서른세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오늘은 '순례자의 길'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사람들이 도대체 몇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부시럭 부시럭~ 비닐봉지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렸고,
이마에 렌턴을 단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영화 속의 FBI가 범죄자를 찾는 듯 불빛이 일렁거렸다.
조금 지나자 이제는 주변 사람들과 신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을 조용히 시작하고픈 나의 바램은
부지런쟁이 순례자들 때문에 다 망쳐 버렸다. -_-

왜 해가 뜨지도 않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꼭두새벽에
꼭 나가야하냔 말이다!

짜증이 나서 몸을 일으키니
아까부터 부시럭 소리에 불빛까지 골고루 하던
아래층의 아저씨가 땀을 뻘뻘흘리며 내게 인사를 한다.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

이 아저씨는 머리에 렌턴을 달고도
내 표정이 안보이나 보다. -_-

(내게는) 기적같은 시간, 새벽 6시 35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러니 5시 40~50분쯤에 일어났나보다.
(세상에나! 그럼 사람들은 5시에 일어난 건가봐! =_=)


밖은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야 표지를 찾을 수가 있나!
정말이지, 사람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마에 렌턴을 단 순례자가 지나간다.
아....

저 사람들은 렌턴의 불빛으로 표지를 찾나보다. -_-;;
보이지 않은 곳에서 표지를 찾는 탐험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다니...

그 순례자를 따라갈까 하다가... -_-;;;;
길가의 카페가 문을 여는 모습이 보이길래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몸도 녹일 겸 뜨거운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2유로.

아침을 먹고 나왔더니 이제서야 어슴프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을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ㅠ_ㅠ


여유있게 걷고 싶었는데...
별로 안좋아진 기분 때문에 집중해서 걸었더니
나도 모르게 빨리 걸어 버렸다.
ㅠ_ㅠ

 [위의사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12km밖에 안남았다. ㅠ_ㅠ

마지막 날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걸까.

 [위의사진] 이제 곧, 산티아고란다..

 [위의사진] 그동안 신던 신발이 무거웠나보다.
누군가 신발을 벗어놓고 갔다.

음... 발냄새가 날텐데...-_-;;;

 [위의사진] 날씨가 좋지 않아 긴팔을 입을 만큼 싸늘했다.

 [위의사진] 좋은 냄새를 풍겼던 나무
밝은 빛을 띄는 나무 껍질이 특이했다.

순례자들이 점점 많아지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늘은 7월 18일인데, 13일부터 31일까지는 산티아고 축제 기간으로
이 중 메인인 24~25일은 불꽃놀이 등의 큰 행사가 열린단다.

당연히 산티아고에서의 숙소가 걱정되었다.
방이 없으면 어떡하지?
알베르게도 꽉차면 어떡하지..? ㅠ_ㅠ

숙소가 걱정되니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몬테 도 고조에 도착했다.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
이곳은 산티아고를 5km 남긴 언덕이다.

 [위의사진] 정상의 설치물

 [위의사진] 요한 파울로 2세가 산티아고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위의사진] 산티아고로 걸어가는 순례자들.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평지를 조금 걷자...
금방 산티아고가 나타났다.

 [위의사진] 이곳에서부터 산티아고가 시작된다는 표지판.

산티아고 표지판을 보자 이번엔
이 여행이 너무 빨리 끝날까 두려워
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_-;;

이젠 도착하기가 싫다.

서른 세번째 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테야(Santiago de Compostella) 20km
6시 35분 출발, 11시 30분 도착.
5시간 소요. 1시간에 4km씩 걸었다.

도시에 들어오면 항상 경험하게 되는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며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도시를 관통한다. 

매끈한 건물과 도로를 지나 오래된 건축물이 시작되는 걸 보니
구시가지에 도착하고 있나부다.

성당이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저 편에 첨탑이 보인다.
본적은 없지만 한 눈에 봐도 산티아고 성당이다.
이제 곧 목적지구나... 점점 슬퍼진다.
 

[위의사진] 이곳을 지나면 산티아고 성당의 광장이 나타난다.

산티아고 성당 옆 벽면을 따라 아치형 통로를 지나는데...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아주머니가 홀로 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눈물을 흘리던 아줌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뒤돌아봤고
눈이 마주치자 아주머니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동시에 허탈한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온다.

코가 찡해지더니 나도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난 이곳에 와서 울 이유가 없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다.
카톨릭 신자도 아니고, 남편이 죽은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건 순전히 다 아줌마 때문이다.

눈물을 닦고 잠시 숨을 고른다.
산티아고 성당을 볼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성당이 보이는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제길, 코가 아직도 시큰시큰하다.

어느새 웅장한 산티아고 성당이 눈 안에 가득찼다.
아아, 정말 산티아고다.

한달여전에 막연히 가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산티아고다.
난 왜 이곳에 오고 싶어 했을까... 참 신기하기도 하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은 순례자의 모습이 보인다.
순례자의 모습보다 관광객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아, 이곳은 관광지로구나. 

[위의사진] 이곳은 내가 한달여동안 걸었던 마지막 종착지, 산티아고다.

성당 가운데에는 산티아고의 석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당 앞에서 껴앉고 울고 있는 커플을 보자
좀전의 눈물은 쏙 들어가고
질투심 반, 부러움 반에 사로잡힌다. -_-

제길!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올테다.

 [위의사진]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들.

 [위의사진]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광장에 누워
한덩인 산티아고를 감상하는 순례자들

성당에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주저앉아버린다.
그냥 마음이 허 하다.

꼭... 금은보화를 찾아 왔는데
그 보물은 다름아닌 바로 '당신의 마음' 이라고 했을 때
'금은보화'를 얻지 못해 맥빠지는 그런 기분이다.

잠시 광장 바닥에 배낭을 베고 누워
산티아고 성당을 바라보다 뭔가가 생각나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맞다, 난 성당보다 지금은 숙소를 구해야한다!
더 이상 알베르게에서 벌레에 물리고 싶지 않아. ㅠ_ㅠ
현실은 무거운 다리를 일으켜 세운다.

숙소 정보를 구할 겸,
순례자의 길을 걸은 증서를 받을 겸 순례자 사무실에 들렀다.

 [위의사진] 순례자 사무소

한달 넘게 걸은 무수한 도장을 보여주자 5분도 안되어 증명서가 나온다.
이 종이 한 장을 얻으려고 걸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달간의 여행이 너무 쉽게 종지부를 찍는다.

산티아고의 거리는 우리 순례자들에게는 낯선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축제분위기가 가득하다.
우리의 소박한 진심은 화려한 축제에 가려 순식간에 묻혀버린다.

그래,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그렇게 순례자 사무소를 나와
인포에서 준 숙소 정보 책자를 참고해 몇 곳을 들렀는데
모두 풀(Full)~이란다. ㅠ_ㅠ

골목골목에 붙어있는 펜시옹(Pension, 펜션)을 찾다
1층에 식료품 가게가 있는 2층 펜션 집을 하루
20유로에 얻었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들어가자마자 좁은 통로 오른쪽에 방이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있고
(목욕도 할 수 있다! ㅠㅠ),
복도 끝의 창가에는 2인용 식탁과 작은 주방이 딸려 있는
작은 아파트다. 냉장고도 물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이런 식의 집을 '펜시옹'이라고 하는데
가격도 서유럽 주요도시의 호스텔 비용으로 저렴하다.

얼른 짐을 풀고 깨끗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매일 샤워 후에 하던 빨래는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한달동안 걷는 동안 입었던 이 옷들은 이제 버릴테니까...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도 입구 한쪽 켠에 뒀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소포를 찾았다.

 [위의사진] 길을 걷던 중 산티아고로 보냈던 소포.

이 안에 새 신발과 이후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 들어있다.


바로 근처에 마트가 있어
며칠동안 먹을 음식을 사왔다.

가장 먹고 싶었던 쌀, 계란, 우유...
모두 걷는 동안 무겁거나 보관하기 힘들어 한달동안 거의 먹지 못했던 음식이다.

 [위의사진] 점심, 제일 먹고 싶었던 건 계란 후라이!! ㅠ_ㅠ

그리고, 스테이크를 구웠다.


샐러드는 이제 밥먹을 때 꼭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위의사진] 저녁, 녹색 라비올리. 신기해서 사봤는데
안에 든 소가 별루여서 반쯤 밖에 안먹고 버렸다.


며칠 잠을 편히 못잤으니 일단 푹 자고
내일 성당에 가기로 한다.

12시 정오, 순례자들을 축복하는 미사가 진행된다.
마지막엔 전날 도착한 순례자의 국적과 명수를 이야기해준다니
오늘 한국인이 몇 명이나 도착했는지 알아봐야지.

원래는 혼자자는 걸 정말 무서워하는데,
한달만에 혼자자게 되니 행복하기만 하다.

아무도 코를 골지 않는다.
아무도 부스럭대지 않는다.

내 소박한 침대는 어느새 천국이 된다.

2008. 11. 7(2010.5.19 업데이트)  pretty chung..:-)

ps : 산티아고에 도착했습니다만, 아직 이야기는 조금 남아 있습니다. :)
산티아고와 피니스테라 이야기가 담긴 에필로그는 곧 올립니다~ :)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36] 에필로그, 산티아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