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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연재]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 3년 후] (2) 첫 날


이 글은 순례자의 길을 걸은 후 3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3년 전의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작은 달팽이처럼 그렇게 느릿느릿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피레네로 출발
어제 분명히 6시에 시계를 맞추어 놓았는데...-_-;;;
잘못 맞췄는지 시계소리는 듣지 못하고
한국분들이 숙소 밖에서 말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제가 묵었던 숙소에는 다섯 분의 한국인이 머물고 있었는데
저와 다른 2층에 계셔서 전날 인사만 나눴더랬죠.

모국어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지만...
문 밖에서 이야기를 하면 건물내에 안들릴 줄 알았나봐요.

제 방에는 순례자 3명이 잠을 곤하게 자고 있었던터라
평상어로 이야기를 나누면 새벽에는 큰 목소리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크게 신경 안쓰시더라구요~ =_=

잠시 뒤에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일행에게 다가가시는 남자 분이 나오시길래
다시 한번 다른 사람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는데
도리어 제게 이 시간이면 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해 그만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잠시 뒤,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서 조용히 하라고 장난아니게 뭐라뭐라 그러셨죠. -_-;
그러게 진작 제 말 좀 들으시지...-_-

순례자 분들은 다른 분들을 생각해서 새벽에는 조용히 말씀 나누기를 부탁드릴게요.
아래처럼 아무도 없는 길거리라 하더라도 건물안에는 사람들이 곤하게 자고 있으니까요. 
유럽의 벽은 방음이 잘 안돼서 소리가 아주 잘 들려요.

[위의 사진] 출발 직전.

자, 6시 50분쯤. 저는 출발했습니다. -_-;;;;

이번 여행도 갑자기 걷게된 거라 등산화가 아닌 평범한 운동화네요. -.-
뭐... 그래도 오늘 하루니까 괜찮아요. :)

어제 늦게 도착했기에 아침을 살 시간이 없어
아주머니에게 아침밥과 점심샌드위치를 살 곳을 물었더니 잘 알려주시더라구요.
(이 장소는 다음 편 (3) 정보 편에 말씀해드릴게요~)

가다가 문을 연 샌드위치점에서 아까 만났던 한국분들과 아침식사를 하고(2.5유로)
점심 샌드위치를 산 후 출발했죠.

론세스바예스에서 4시에 픽업 차를 타고 내려와야하기 때문에
지난 번처럼 잘못된 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없어야해서
조금 긴장을 하며 출발했습니다.

 [위의 사진] 이 표지만 따라가면 됩니다. 오랜만에 봤더니 완전 감격! ㅠㅠ

[위의 사진] 갈림 길

왼쪽 길로 가면 첫 번째 산길, 오른쪽 길로 가면 제가 2006년에 걸었던 길입니다. :)
이번엔 왼쪽 길을 따라갔지요~ -.-

비가 내리고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피레네의 아름답다던 경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요.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운이겠죠? :)
하지만, 너무 쨍쨍한 날씨보다는 약간 흐린(비는 오지않는)
그런 날씨가 걷기에 편하고 좋아요. 그런 점에서는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겠네요. :)

비가 옷을 적실만큼 와서 우비를 입었는데
이번 여행에 가져오길 잘했네요.

[위의 사진] 풀을 뜯는 양떼

이 지역은 동물보호(낙농업?)지역이기 때문에
양떼 근처에서 큰 소리를 질러 양을 놀라게 하거나(양은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위협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종종 보게 되는데 완전 소심한 동물입니다.

이 곳까지 오르는데도 벌써 우비 안은 땀으로 흠뻑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 이제 시작이니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출발한 독일언니는 가방을 내려놓고 비를 홀딱 맞으며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쉬고 있습니다.
이미 경험해본 바 있는 저는 그 순례자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 내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테지요. ㅠ_ㅠ

[위의 사진] 전망대, 전망이 좋은 곳이니 이런 걸 세웠겠죠? -.-

그림과 풍경을 비교해 봐야하는 전망대인데
보다시피 안개와 구름으로 앞이 하나도 안보이네요. -_-

큰 카메라를 가져왔지만, 가방의 짐이 그닥 많지않은터라
10~20kg의 짐을 걷는 순례자들보다 훨씬 덜 힘듭니다.

제 가방은 먹을 것과 물을 포함해 3~4kg쯤 되었을 것 같아요.

[위의 사진] 오리손의 바 겸 알베르게

2시간 20분만에 도착한 오리손입니다.
생쟁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알베르게&바인데
걷는 초반 구간이기 때문에 이곳까지 오는데 꽤 힘들어요.

해발 770m이니 고도상으로는 피레네의 정상인 1410m의 반 정도 되는 곳이거든요.
첫날이 총 26km이니 거리상으로는 1/3정도 되는 지점입니다.

저는 잠깐 쉴겸 커피를 마실겸 들렀지요~ :)

[위의 사진] 에스프레소

예~ 오랜만에 까미노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완전 꿀물 같았어요~ :)

주인 아주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힘들죠?"하는데...
오르는 초반에는 좀 힘들긴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걸어서 너무 즐거운 나머지 마음이 상쾌해
별로 안힘들더라구요~ :)

피레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곳에서 1박을 하고 가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생각에는 3~4시간 정도면 도착할 곳이라 그냥 한번에 올라가시는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뭐, 연세가 있으시다거나 정말 체력이 없다면 나눠 걸으시는게 낫구요.

건물 앞에는 식수대가 있어 물을 채울 수 있으니
이곳까지 너무 많은 물을 가방에 넣고 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위의 사진] 십자가부터는 거친 흙길이 이어집니다.

생 쟁에서 처음 출발한 순례자들은 아직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은 낯설어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첫날인 순례자들이 궁금해 만날 때마다 잠깐잠깐 말을 거는데
에콰도르에서 온 부자도 있었고, 프랑스 중년 부부도 있었고,
아빠가 추천했다면서 걷게된 미국 청년도 있습니다.

모두 각기 다르지만 이 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겠지요. :)

[위의 사진] 이런 길을 걷게 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아무래도 미끄러지기 쉬울 듯.
오른쪽 바위의 순례자의 길 표지가 보이시나요? :)

[위의 사진] 표지

표지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3년 전의 첫날, 그렇게 고생했던 것은 표지를 찾는 법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목적지인 론세바예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는
세 번이나 길을 잘못들어 예전의 저처럼 이틀이 걸렸다고 하더라구요.


중간중간 헛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만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여 걸으시면 돼요.

잠시 뒤, 어디선가 차 소리가 나더니 스페인어가 들립니다. :)
국경을 물었더니 근처 조금 위부터 스페인이라고 하네요.

밝은 표정에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들,
아주 가까운 곳인데도 프랑스와 확연히 다른 느낌입니다.

아아, 전 얼마나 스페인 사람들을 그리워했던가요! ㅠ_ㅠ

이 사람들은 비 때문에 손상된 표지와 말뚝 등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친절하게 제게 인사를 하며 사라집니다.


[위의 사진] 첫번째 거리를 나타낸 표지,
이곳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기념촬영을 합니다. :)

765Km, 이 표지를 보니
생쟁에서 산티아고까지 780km가 되겠구나 싶네요.
이 표지에서 생쟁까지가 17~18km 정도 되거든요~


 [위의 사진] 잠시 뒤 나타난 마지막 식수대

저는 사실, 이때 쯤이 한 반쯤 온 줄 알고..-_-;;; (겨우 8km쯤 남은 상태였는데..-_-;;)
쉴 겸 점심도 먹을 겸(마지막 식수대니...) 점심 샌드위치를 꺼냈습니다.

 [위의 사진] 점심 샌드위치

4유로 주고 샀는데...-_-;; 정말 맛이 없었어요.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다능.

식수대 앞에 있으니 제가 지나치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

다들 저의 초미니 가방을 부러워해서 사연을 설명해주느라 입이 아팠지만...-_-;;;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었으면 종종 볼 친구들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나바라주...흑..... 그리웠던 스페인 땅입니다!! ㅠ_ㅠ
스페인이 너무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위의 사진] 표지는 다양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선택한 표지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죠. :)

론세스바예스 8km, 2시간 15분!? +.+
이런...-_-;;; 중간에 헤매거나 4시까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일부러 좀 빨리 걸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 버렸어요. ㅠ_ㅠ

2시간 15분 걸린다는 표지를 보고 속도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일찍 도착하면 시간을 보낼 곳도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가능한 시간 내에서 충분히 길을 즐기려고 했는데...ㅠ_ㅠ

스페인 땅에 도착하니 길도 풍경도 더 아름다워 집니다.
물론, 날이 흐려서 프랑스쪽을 잘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저의 편견일까요...? -_-;;;

안개 자욱한 산 길이 이어집니다. :)



 
아름답죠? :) 공기는 또 얼마나 맑은지 몰라요.

표지는 더욱 선명해지고 앞으로는 길을 잃을 확율도 낮아 집니다.

 [위의 사진] 표지가 네 개 씩이나~! +.+

 [위의 사진] 길이 아닌 곳은 저렇게 X표시가 보이니 덜 헤맬 수 있어요.

 [위의 사진] 자주자주 보이는 선명한 표지

저도 모르게 정상을 지나쳤는지 계속에서 내리막 길이 시작됩니다. :)

 
이 표지에서 길이 두 곳으로 나뉘는데 론세스바예스까지 목적지는 같습니다.
저는 시간이 남아 일부러 더 걸으려고 먼 길을 선택해 걷기 시작했죠. --;

 
길이 너무 아름답고, 공기도 너무 맑아 맘껏 들이 마셨어요. :)

그리고, 잠시 뒤 익숙한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ㅋㅋㅋ 이곳은 바로, 제가 3년 전에도 보았던 곳!
두 갈래 길이 모아지는 지점이었군요. :)

성당 앞에는 두명의 서양인이 있었는데
제가 근처로 다가가지 한명이 다른 한명에서 뭐라 그러더니
후다닥 옷을 추스리는 모습이 아마도 화장실을...=_= (안개 때문에 잘 안보였어요~)

자전거 순례자에게 성당이 열렸냐고 물었더니
아래에 보이는 곳으로 열리긴 했다고 대답해 주었어요.

 
ㅋㅋ, 열리긴 했죠. :)

스테인드 글라스 색이 너무 아름답죠? :)

 
매직아이같은 집을 지나...표지를 따라...


 산길을 걸으면...

 
마침내 종착지가 나타납니다. :)

 
익숙한 론세스바예스의 건물과 성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26km
생 쟁 출발 6시 45분, 론세스바예스 2시 40분 도착
7시간 55분 소요.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 =_=


이곳은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 미사가 열리는 성당입니다.

 

산티아고의 모습도 보이지요. :)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면 론세스바예스의 순례자 사무실이 나타납니다.

 
자세한 안내들이 적혀있어요~ ^^

론세스바예스에는 두 개의 숙소가 있는데
하나는 공식 알베르게와 다른 하나는 유스호스텔입니다.
저는 3년 전에 유스호스텔에 묵었었죠.

[위의 사진] 공식 알베르게의 모습

길을 계속 걸었다면 아마도 이번에는 이곳에서 묵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생쟁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젖은 몸도 말릴 겸
스페인 음식도 먹을 겸 주변의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갑니다.

오늘의 메뉴, 전식으로는 믹스드 샐러드, 본식으로는 스테이크,
후식으로는 좋아하는 플랑을.. 선택!  >.<

 
프랑스와 차원이 다른 상차림..-_-;; 보이시죠? 와인이 병째로 나온 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가는 믹스드 샐러드~ +.+

본식, 아.. 감자는 싫은데... 유럽은 감자가 메인이에요. ㅠ_ㅠ

 
그리고, 후식. 계란 푸딩인데 생크림과 함께 나왔네요.
에스프레소랑 먹으면 맛나요. :)

커피를 추가로 시켜서 원래 돈을 더 내야하는데
주인 아저씨가 인심 서비스~ >.< 모두 해서 총 14유로 냈어요~
(이 가격은 전체 순례 길에서 보면 비싼 것이지만 프랑스에 비해선 가격대비 질로 보면 월등~!)

이런 스페인을 떠나 다시 프랑스령으로 돌아가려니
발이 안떨어지더군요. ㅠ_ㅠ

천천히 밥을 먹었는데도 시간이 남아
공식 알베르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오전에 만났던 한국 분들과 길에서 만났던 외국 친구들과
또, 발렌티어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네덜란드인 3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위의 사진] 공식 알베르게 내부의 모습

6시까지 알베르게에서 비를 피했는데
발렌티어 하시는 분들도 순례자의 길을 3차례나 다녀오신 분들이더라구요.
그 중의 한분은 김남희씨와 함께 길을 걷기도 했구요..

 계속 길을 걸었다면 순례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발렌티어 분들과도 이야기도 더 나눌 수 있었을텐데...
또, 기다리는 동안 안에 들어가 함께 이야기를 하자는 순례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저는 론세스바예스에서 기념품으로 구입한 크레덴시알과 함께
6시 좀 넘어 도착한 차를 타고 생쟁으로 돌아왔습니다.

[위의 사진] 픽업 버스를 탔던 라 포사다(La Posada), 호텔겸 바.
예약한 순례자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해줍니다. 이곳에서 생쟁에서 올려보낸 짐을 찾기도 하죠.


돌아오는 차 안에는 레옹에서 온 미국인 모녀가
생쟁에서 출발할 기대를 가득안고 타고 있었죠.

함께 가는 동안 오늘의 걸었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창 밖으로는 제가 땀을 뻘뻘 흘렸던 걸었던 길들이
순간순간 지나갑니다.

저 길의 옆에는 이렇게 차들이 쌩쌩~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는데
조금 떨어진 순례자의 길은 문명과는 떨어진 또 다른 세상입니다.

차로 생쟁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분.

저는 그 20분짜리 길을 오늘 하루종일 걸었지만, 
8시간 동안의 길은 그동안 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짐을 덜어내고
앞으로 계속 가슴 속에 살아 숨쉬겠지요. :)

2009. 8. 17(2010.4.26 업데이트) pretty chung :)


[순례자의 길. 3년 후] (3) 정보 - (완결) 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