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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쁘리띠의 특별한 여행

[엄마와 함께한 여행] 중국 시안 4박 5일 - 네째날, 화청지/진시황릉/병마용

 

쁘리띠(chungeuni@naver.com)  
협찬 : 아시아나항공 http://www.flyasiana.com  


어제 잠자기 전, 엄마와 나는 알람을 맞추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잠을 청했다.

'오늘도 늦게 일어나면 이번 시안 여행에서
어이없이 시안 하이라이트를 모조리 놓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리라..-_-;;;'


진땀나던 아침
다행히 새벽 5시 40분 알람소리를 들었고 6시 조금 넘어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7시까지 오늘의 목적지인 화청지, 진시황릉, 병마용 방향 버스를 타러 시안역으로 갔다.
조금 타이트하긴 했지만, 어째 일이 술술 풀린다했다.

가던 중에 엄마가 배가 아프단다..-_-;;
대로 변에 있는 호텔에 가서 화장실을 좀 쓰자고 했더니 안된대서(나쁜 사람들! -_-)
기차역 앞의 맥도날드까지 전력질주했다.


7시 차는 어차피 놓쳤겠고
그냥 여유있게 슬슬 걸어갔다.

[오른쪽 사진] 그때, 투어버스 안내소의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
배차 시간 정보만 알려 줬어도
이리 불안하지 않았을텐데..-_-;;;

그러나 막상 버스 타는 곳에 가보니
웬걸, 버스가 넘친다. -_-;

정말 다행이다. 여유있게 버스에 올라탄다. :)

[위의 사진] 줄줄이 서 있는 병마용행 버스들. 빨간 버스 바로 옆 버스부터 순서대로 출발한다.
306번, 투어버스요금은
7위안, 표는 버스안에서 차장에게 구입하면 된다.

화청지(華淸池)
화청지는 당나라의 왕실 휴양지로 아름다운 자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수질좋은 온천으로도 유명해 샤워나 목욕, 족욕 등을 할 수 있으니
온천욕을 좋아한다면 미리 목욕용품이나 화장품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시안에서 버스로 30~40분 정도 이동하니 차장이 내리란다. 화청지 정문 바로 앞이다.
원래 계획은 먼저 병마용->진시황릉->화청지 순으로 보려고 했는데
차장이 화청지-병마용 구간은 버스가 서지 않는다나?
(뭐지? 난 예전에 그 순으로 봤는데...-_-)
여튼 전문가의 말이니 안내원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내렸다.
(돌아올 때 보니까, 일반버스에서 중간에 화청지에 내려 달라고 하는 걸 봤으니 내려주긴 하나부다.)

[위의사진] 화청지 매표소. 성인 70위안으로 매우 비싸다.

[위의사진] 화청지 요약도. 엄마와 난 입구에서 직진해 장개석이 머물던 곳->양귀비가 목욕한 곳
->구룡호 주변->청궁어탕 유적 박물관 순으로 돌 예정이다.
입장티켓 뒷면에 지도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오간청(五間廳), 장개석이 머물던 곳
[위의사진] 오간청으로 연결되는 입구

[위의사진] 이어지는 정원

[위의사진] 오간청, 청나라 말에 세워진 건물로 고급관리들의 휴양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장개석이 부인과 함께 머물다 이곳에서 체포되었는데 이를 '서안사변'이라고 한다.
건물 맨 왼쪽 벽면에는 총탄자국을 보존하기 위해 유리로 일부분을 덮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서안사변'의 내용은....
당시 국민당을 이끌던 장개석은 반공주의를 표방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 홍군을 토벌하려 하였고
그의 산하에 있던 동북군벌의 장학령과 서북군벌의 양호성은 선 반일투쟁을 표방하는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장학령은 여러번 선 반일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1936년 12월 12일, 반일투쟁을 위해 양호성과 연대하여 그를 체포한 사건이 '서안사변'이다.
당시, 100여명의 군사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후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고, 일본과 맞서 싸우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장개석은 공산당의 리더인 모택동과 주은래에 의해 처형될 위기였으나
소련의 반대로 풀려나고 1945년 대만으로 밀려간다.

[위의사진] 건물 내부 모습

[위의사진] 오간청 옆으로 연결된 길.

양귀비상 주변, 온천 유적지
[위의사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따라갔더니 양귀비상이 나왔다. -_-;;;
이 주변의 건물에 온천 유적지인 연화탕, 태자탕, 상식당, 그리고
현종과 양귀비에게 선물한 해당탕이 있다.


양귀비(719~756년)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알려진 당나라 시대 '절세미인'이다.
 현재의 미인형과는 좀 다른 토실~한 미인으로 아마도 현실에 그녀가 나타난다면
그리 미인으로 취급받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위의사진] 중국의 4대 미인도

애니웨이, 역사서를 뒤적여보면...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18번째 아들(수왕)의 부인으로 17세에 궁으로 들어왔다.

황후가 죽는 후 현종은 새로운 비를 물색하던 중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들려와 궁금해 하던 차에
(궁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미인 3천명이 있었는데... 맘에 든 사람이 없았다고 한다..-_-;)
어느날 술자리에 그녀를 불러 그녀를 지켜보는데 태종이 직접 만든 악보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위의사진] 이 이야기를 전한 그림, 이후에 가게되는 청궁어탕 유적박물관에서.

 [위의사진] 양귀비 언니, 너무 아름다우시다. +.+

이때부터 당연히 현종은 양귀비가 아른거려 일이 손에 안잡혔을 터,
양귀비의 몸종에게 마음을 돌리도록 종용해
(양귀비 또한 부귀영화에 관심이 더 많았단다.)
일단 수왕을 떠나 화산으로 들어가 여도사(女道士) 생활을 하게 하고 다시 궁으로 불러 들인다.
'귀비'
(황후는 아니지만...황후처럼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라는 칭호를 받은 때는745년 27세다.
(즉, 이때가 둘의 관계가 공식으로 인정된 때)
현종은 양귀비를 '말하는 꽃(어머나! +.+)'이라 부르며 매우 사랑했다 한다.

양귀비는 황후의 권력으로 호화로운 삶을 살고,
그녀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도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어느날 현종이 양귀비의 언니인 곽국부인(그녀 또한 양귀비만큼은 아니더라도 미인이었다고..)과
잠자리를 하게 되고 이에 질투심이 활활 타오른 양귀비는 곽국부인을 다시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거절해
화가 난 현종이 그녀를 오빠인 양국충의 집으로 쫓아낸다.

양충국 역시 그리 질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곽국부인과 정을 통하는 사이로(아, 이 나라 완전 콩가루야..-_-;;)
양씨 집안의 부귀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쓰는데... 이용된 곳이 바로 이곳, 화청지다!!

 [위의사진] 747년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든 해당탕.

양귀비가 이곳 해당탕에서 목욕을 하고 젖은... 그리고 벗은 몸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 67세의 현종은
(이 타이밍을 멋지게 맞춘 양국충과 환관 고력사..역시.. 정말 대단하시구료. =_=)
완전 흥분한 나머지 이전의 모든 일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다시 양귀비와의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

그렇게, 현종이 나라 일을 등한시하고 양귀비의 친척들이 권세를 잡고 온갖 사치로 나라가 기운다.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너무 길다..-_-),
양국충과 양귀비가 수양아들 삼은 안록산(양귀비와 사귀는 사이였음-_-;)
의 권력싸움의 여파로 '안록산의 난(755년)'이 일어난다.
 이 난의 여파로 도망을 가던 중 군사들이 나아가지 않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며 양씨집안을 모두 죽이라고 한다.
양씨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양귀비 또한 불당에서
액살(명주천을 꼬아 만든 줄로 목이 졸려 죽는 것)형에 쳐하도록 명한다. (756년, 33세)
이후 장안성을 다시 회복한 이후에 현종은 남은 생동안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아침 저녁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연애도 좀 국사를 돌보면서 하던가
부귀영화도 좀 정도껏 누리지....-_-;;;;
난 무엇보다 수왕의 마음이 궁금한데... 이런 걸 정리해놓은 기록은 없네..-_-;;
현종은 양귀비를 뺏은 게 미안했던지 다른 부인을 소개했다는 것 정도? -,.-

 [위의사진] 양귀비의 가슴을 만지는 변태 아저씨. -_-

양귀비상을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어디서 많이 보던 몸매인데... 허리 잘룩한 것만 빼면 나 닮지 않았어? +.+"

라고 말하자.... 엄마는
"여잔 다 저렇게 생겼어.."
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능...-,.-;;;

그나저나, 양귀비상이 원래 여기에 있었나 싶었더니...
구룡호에서 옮겨진 것이었다.

지난 여행 때의 사진을 보자~

 옛날 위치에 있었으면 저런 변태한테 당하지는 않는건데...-_-;;;

 [위의사진] 온천물에 손을 씻는데 1위안. 머리감는 사람도 봤다. =_=

길을 가다보니 양귀비 부조가 있길래 찍었다. -.-

 [위의사진] 풍만한 미인으로 가무에 뛰어났고, 황제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했다는 양귀비.
이백(李白)은 그녀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 제발 좀.. 그 선캡 좀 벗으라고 몇 번을 말했건만...--;;;
머리 눌렸다고 절대로 벗을 수 없단다..--;


구룡호 주변
 [위의사진] 온천물에 족욕하는데 20위안.

 [위의사진] 손 씻는데 1위안. 머리를 감아도 되나보다.

 [위의사진] 샤워는 15위안, 목욕도 할 수 있는데... 위의 사진은 500위안 짜리.
방도 딸려 있는데... 방은 별루... 허름한 여관분위기. 손님이 없는지 깎아준다고 했다.

지난 번에도 1위안짜리 달랑 손만 씻어서
이번에는 샤워나 족욕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싫단다. -_-
샤워나 목욕은 화장할꺼를 안가져왔다나?
족욕은 돈이 아깝단다.

몇 번 말하다 안하기로 하긴 했는데...
잠시 냉전시간이 있었다. -_-;;;

혼자왔었음 둘 중 하나는 했다. -_-

 [위의사진] 구룡호의 모습, 이곳에서 음악과 춤이 함께한 공연을 하는데
3월 15일~10월 31일 사이에 공연하며 요금은 258위안/218위안(VIP석은 988위안까지 있다.)
보고 싶었지만, 공연시간이 20:30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불가능해서 패스.

아래 광고를 보면 아마도 멋질 것 같다.


 [위의사진] 음.. 내겐 건물 지붕은 머리, 양쪽 북은 눈.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건 입, 양쪽 금색 나무모양은 손으로 보이는데...
('돈데크만'이 생각난다능...=_=) 내가 이상한건가...? --;

 
 시안 여행의 팁~!

시안 시내에서 '당락무(당나라 시대에 번성했던 춤)'공연을 하는데
티켓은 쇼만 볼 경우, 220위안(8시 30분 입장),
식사까지 함께할 경우에는 500위안.(7시 입장)
대부분 공연장까지 무료 픽업서비스를 해준다.


 청궁어탕 유적박물관
 [위의사진] 중국여자같은 나. -.- 뒤로 보이는 건물이 청궁어탕관이다.
내부가 매우 잘 꾸며져 있고 사진찍기에도 좋은 곳.

 [위의사진] 화청지 미니어쳐

 [위의사진] 현종과 양귀비신가..? 공물을 받는 모습.

케이블카...-_-;

 
엄마가 화청지 뒤의 케이블카를 보더니
케이블카는 반드시 타야한단다. 왜냐고 물었더니...
높은데 올라가서 화청지와 시내를 봐야한다나?
아까 청궁어탕관에서 보지 않았냐고 했더니
실제로 보는 거랑 다르단다.

케이블카 요금이 무려 1인당
40위안. --;
족욕을 2번할 수 있는 돈이고, 또는
족욕과 샤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돈인데...

잠깐 올라갔다 오는게 그렇게 좋은건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피같은 내 돈인데...ㅠㅠ

 [위의사진] 왜 이 비싼걸 꼭 해봐야하는지 모르겠다. -_-
엄마는 여기가 이렇게 큰 곳인줄 이제서야 알았다고 좋아했다.
그나저나 저 뿌연 것들은 황사인가..-_-;;;


케이블카 위로 다른 건축물들이 있는데 요금이 또 40위안이다.
너무 비싼데다 다녀오면 병마용을 놓칠 것 같아 케이블카를 다시 타고 내려왔더니
바로 앞에 택시가 진시황릉까지 5위안이라고 타란다.

큰길가까지 내려가기 귀찮았는데 잘됐다 싶어 탔다.
5~10분 정도 소요.

진시황릉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뒤 살 궁전을 만들었는데 무려 700,000명의 병사, 노역자, 노예가 동원되었다.
무덤을 만든 후 죄수와 장인들은 생매장 되었으며, 진시황은 자신의 몇몇 첩들과 군인들까지 순장시켰다고 한다.
규모나 당시의 노역자 동원능력 면에서 이집트의 쿠푸왕의 무덤과 비견되는 무덤이다.
가로 345m, 세로 350m, 높이는 115m였으나 비바람에 풍식되어 현재는 76m다.

[위의사진] 왜 진시황릉의 서쪽에서 발굴된 유해들.

진시황릉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사기'의 '진황본기'에서 묘사하길 "진황제는 전국을 통일한 후 능묘건축에 착수했고,
전국에서 70여만의 죄수를 그곳에 보내 노역에 종사하게 했다. 구리로 주조한 관을 넣고,
별궁을 건설해 진귀한 보석을 가득 넣고, 도굴을 대비해 화살장치를 설치했다.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도굴과 부식&부패 방지), 인어의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불을 켰다."


멀리서 보면 작은 산처럼 보이는 이곳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산인척 보이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중에 석류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이곳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위의사진] 진시황릉 앞에서 산 석류. 1위안.

[위의사진] 진시황릉 입구. 입장료 40위안. =_=

[위의사진] 엄만 왜 석류랑 같이 찍는거야? =_=

[위의사진] 이렇게 올라가야 한다. 양옆은 석류나무가 즐비하다.

[위의사진] 올라가면 땡볕에 달랑~ 이런게 세워져 있다.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기술력이 부족해 아직 못하고 있는 거란게 맞다.
고서에 나온대로 이곳의 토양에는 수은의 함류량이 매우 높단다. 정말, 그대로라면...
땅을 팠다간 인디애나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기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수은에 죽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들어온 공기로 유물들이 부식되어 한줌의 재가 될 수도 있어 열지 못하고 있는 중.
달랑~ 동산하나만 있기 때문에 돈이 여유있지 않다면, 다음에 개봉한 후에 가도 늦지 않을 것 같다.
한참 걸릴 것 같지만...=_=

천하를 통일한 권력으로 전 세계 곳곳에 불로장생약을 구하던 진시황,
그도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을...
그걸 알았으니 그 두려움에 이렇게 궁을 지었겠지...

진시황릉 밖으로 나오니 버스도 많고 택시도 많다. 역시 5위안에 병마용으로 향했다. 5~10분 정도 소요.

병마용갱
병마용갱은 1974년, 마을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 발견하게 된 곳이다.
3~4m 쯤 파니 테라코타(흙으로 빚어 구운 토기) 전사의 가슴이 나왔단다. 조금 더 파니, 팔, 다리, 머리가 나왔단다.
당연히 중국 뿐만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78년 프랑스의 시라크 전 총리가 이곳에 와서 '세계의 8번째 불가사이'라고 말해 요즘은 모두들 그렇게 부른다.

진시황을 지키는 지하군대로 7.5km 떨어진 죽은 진시황을 지하에서 호위하는 부대다.
궁이 있으니 당연히 신하와 궁녀, 군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쩜 당연하겠다. (그래서 생매장한 듯..=_=)
수천 병사를 죽일 수 없으니 테라코타로 만들어서 고맙다고 해야할까...-_-;;;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 이곳 역시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위의사진] 주차장에서 병마용으로 이어진 길에있는 진시황 동상.

[위의사진] 입구의 모습, 입장료는 90위안. (오늘 지출이 장난이 아니다. ㅠㅠ)
날씨가 흐린 날은 상관없지만, 여름철엔 입구까지 그늘없이 꽤 걸어야 함으로
양산이나 모자,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보는 순서는 시네마->1호갱->3호갱->2호갱->박물관 순으로 보면 된다.

입구에서 40~50 위안에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주는데,
현금만 가능, 데포짓으로 200위안이나 여권을 하는데 200위안이 없어 빌리지 못했다. ㅠㅠ
단체라면 가이드 안내원을 쓰면 되는데 한국어를 하는 중국인 가이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건 실제로 듣는게 좋다.)


시네마
입구에서 들어와 가장 왼쪽에 있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병마용갱의 역사와 발굴과정을 20분 정도의 영상으로 소개해주는데
갱을 돌기 전에 보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위의사진] 상영 중, 진시황을 보여주고 있다. 360도 화면이 볼만하다.

[위의사진] 내부는 병마용과 가까이 사진 찍을 수 있어 좋다.

1호갱
폭 62m, 길이 230m에 이르는 가장 규모가 큰 갱.
6000천여명의 테라코타 전사가 있고, 말, 40여점의 전차가 발굴됐다.
전차와 보병을 혼합편성한 장방향 군진이다.


[위의사진] 들어가기 전, 규모를 한번 상상해보라.

[위의사진] 앞쪽은 투구를 쓰지 않은 선봉부대로 창과 활을 들었다.
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분석해 보면 막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만반의 태새를 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사진] 왼쪽에서 본 모습, 뒤쪽의 사람 크기를 비교해보자.
관광객들은 위에서 내려다봐서 그 크기가 짐작이 안되지만
테라코타 전사들은 일반인보다 키가 178~187cm(최고 2m)로 크다.

[위의사진] 하얗게 보이는 작은 패널에는 숫자가 쓰여 있는데...
오디오가이드에서 설명을 해주거나 설명 패널이 붙어있다.

[위의사진]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위의사진] 예전에 왔을 때는 조각을 맞추고 있었는데... 지금은 작업이 모두 끝나 이렇게 세워져 있다.

[위의사진] 예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처음에 봤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3호갱
총 면적 500㎡으로 1, 2호갱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있고,
지휘관을 호위하는 있는 곳이다.

[위의사진] 3호갱 입구, 1호갱을 돌아본 후 3호갱 후문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정문은 거의 출구로 이용된다.

[위의사진] 규모는 작지만 지휘관을 보필하는 중요한 막사.

2호갱
124m, 94m의 크기로 전차용 테라코타 말 350마리,
기병용 말 116마리, 목재전차 89개, 테라코타 병사가 900명이 발굴된 곳이다.

[위의사진] 2호갱 입구. 역시 정문은 출구가 된다.

[위의사진] 내부 모습, 보병, 기병, 전차 3개 병종을 혼합한 곡진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형성한 진은 실제 당시 전투에서 만들던 진으로 군사전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겠다.
단지 발굴이 많이 안되어 있을 뿐..=_=

1/2/3호갱은 당시 진나라 군대의 축소판으로
병사 100만, 전차 1000승, 전마 만여필을 축소해 만들었다. 


이곳에는 실제 테라코타 병사를 가까이 볼 수 있는데..
그 세밀함에 놀라울 뿐이다.

[위의사진] 오른 손에는 무기를 든 흔적이 있다.

[위의사진] 앗, 아저씨 얼굴 사각형이었네. =_=

[위의사진] 머리형이나 뒷모습까지 매우 세심하게 신경썼다.
허리춤에는 채색이 되었던 흔적이 보인다.

[위의사진] 장군 테라코타. 기품이 다르다.

[위의사진] 당시 의복이나 장신구 등을 그대로 보여주니 더욱 흥미롭다.

[위의사진] 뒷모습, 머리형이나 선을 만드는 솜씨가 정말 예술이다.

[위의사진] 원래 채색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모습들.
채색으로 보았다면 더더욱 사람과 같았을 것 같다.

[위의사진] 아직도, 발굴 중

박물관
상설 전시회도 하고, 중요한 발굴품은 이곳에 소장되어 있으니 놓쳐서는 안된다.

[위의사진] 박물관 입구, 2호 갱을 나오면 보인다.

[위의사진] 특별전시중인 모 화가의 작품. 하늘로 막 뛰어오를 것 같다.

[위의사진] 목재로 만든 전차와, 토기로 만든 말과 병사.
저대로 묻혀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말의 모습은 실물크기보다 조금 크고 정교하게 작업되어 있다.

엄마는 병마용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중국을 여행한다면 이곳 서안에서 병마용에 오지않으면
중국을 봤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저승까지 이어가려고 한 어마어마한 권력, 그리고 이를 만들 수 있었던 힘.
이를 느껴본다면 중국의 자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스케일 큰 잠재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너무 걸었더니 빨리 숙소로 가서 자고 싶다.

밖을 나오니 예전에는 없던 기념품 가게 건물이 대규모로 들어선게 보인다.

[위의사진] 곳곳에 이런 사진찍는 곳도 있고...

[위의사진] 역시, 옷도 빼놓을 수 없다. 특별히 이곳이 제일 예쁘다.
사진 속의 중국 언니들 포즈가 역시 예사롭지 않다. =_=

[위의사진] 열심히 판매중인 석류와 홍시.
사고 싶었다.ㅠㅠ

버스 서는 곳을 물어보니 주차장을 알려준다.
주차장에는 올 때 타고왔던 306번 투어버스는 아니지만
다른 버스가 있다. 가격은 동일하게 7위안.

[위의사진] 길마다 석류를 팔고 있다. 여성호르몬...=_= 사고 싶었는데...

그런데 괜히 탔다. =_=

동네동네 다 둘러가는 간이버스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벗어나 뽀얀 먼지날리는 흙길로 달린다.

한사람 내려주고 다시 마을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1시간 45분으로(투어버스는 1시간 30분) 15분 정도 더 걸리긴 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옆에 사람이 버스안에서 담배를 펴서 그런지
내겐 길고 길게만 느껴졌다.


엄마는 옛날 우리나라 70년대 시골이 이랬다며
간이버스를 타서 모처럼 옛추억에 잠겼다.
나중에 물어보니 병마용 보다 옛 추억을 기억하게한 버스가 더 즐거웠단다.
으흠~

---------

ps : 이날의 저녁
사이트 회원인 아무가 추천해서 간 곳.
시안 기차역을 등지고 맥도날드쪽으로 건너 걸어가면 보인다.

[위의사진] 빨간 간판이 걸린 곳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메뉴에 그림이 있어서... 주문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뷔페를 먹자고 한다. 실컷 골라놨는데...-_-;;;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거다.

[위의사진] 뷔페 1인당 50위안.

서양단체들이 물밀 듯 들어왔고
맛은 적당했지만, 그냥 요리 시킬껄 후회했다. ㅠㅠ
여기와서 중국음식 제대로 시킨적이 없어. 모처럼 겨우 식당왔다니 뷔페라니..ㅠㅠ

호텔까지 멀지는 않았지만,
식곤증에 피곤한 관계로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택시 7위안.